항목 ID | GC082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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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趾光 |
영어공식명칭 | Yi Jiguang |
이칭/별칭 | 자응(子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우진 |
활동 시기/일시 | 1757년 - 이지광 벼슬길에 나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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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지덕사(至德祠)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부임|활동지 | 청주목(淸州牧) - 충청북도 청주시 |
부임|활동지 | 충주목(忠州牧) - 충청북도 충주시 |
부임|활동지 | 공주감영(公州監營) - 충청남도 공주시 |
부임|활동지 | 이천군(利川郡) - 경기도 이천시 |
부임|활동지 | 고양군(高陽郡) - 경기도 고양시 |
부임|활동지 | 단성현(丹城縣) - 경상남도 산청군 |
부임|활동지 | 평창군(平昌郡) - 강원도 평창군 |
부임|활동지 | 제주목(濟州牧) - 제주특별자치도 |
부임|활동지 | 임피현(臨陂縣) - 전라북도 군산시 |
부임|활동지 | 흥덕현(興德縣) - 전라북도 고창군 |
성격 | 문관|왕족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제주목사(濟州牧使)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으로 옮겨진 양녕대군의 사당을 지켰던 조선후기 봉사손이자 문신.
[개설]
이지광(李趾光)[?~?]은 양녕대군의 13대 종손으로 양녕대군의 사당을 지키다가 영조에게 발탁되어 벼슬길에 나섰다. 충추목사(忠州牧使), 청주목사(淸州牧使)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며 높은 명망을 얻어 현명한 수령과 관련된 민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계]
이지광의 생몰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양녕대군 이제(李禔)의 13대손이다. 자(字)는 자응(子膺)이다.
[활동 사항]
이지광은 1757년(영조 33) 영조가 양녕대군의 사당 지덕사(至德祠)를 보수하게 하고 몸소 제문(祭文)을 지어 제사를 드릴 때 처음 벼슬을 제수받았다. 정조 연간 편찬된 한성부지(漢城府誌)인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이지광은 양녕대군의 종손으로 사당을 홀로 지키고 있었으나 가세가 빈한하여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날 이지광은 사당 경내에 무성한 홰나무들을 베어 버리면 운이 트일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나무를 베었다. 이후 영조가 남관왕묘(南關王廟)에 행차했다가 이전까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사당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양녕대군의 사당임을 확인한 영조는 사손(祀孫)인 이지광에게 벼슬을 내리고 사당을 보수하게 하였다”고 한다. 양녕대군의 사당은 원래 남관왕묘 맞은 편인 현재의 후암동 일대에 있었으나 1912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으로 옮겨 지어졌다.
이후 벼슬길에 나선 이지광은 단성현감(丹城縣監), 흥덕현감(興德縣監), 이천군수(利川郡守), 고양군수(高陽郡守), 공주판관(公州判官), 충추목사(忠州牧使), 청주목사(淸州牧使) 등을 역임하며 지방관으로 백성을 잘 다스린다는 명망을 얻었다. 정약용(丁若鏞)의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따르면, 이지광은 정약용의 부친인 정재원(丁載遠) 및 이인섭(李寅燮)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세 사람 모두 ‘잘 다스린다[(善治]’는 명망이 있었다고 한다.
또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여지고(輿地考)」에는 이지광이 강원도의 고성군수(高城郡守)를 지낼 때, 고려 시대에 지어진 사선정(四仙亭)을 중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9세기에 지어진 『청구야담(靑丘野談)』에는 이지광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어떤 종이장수가 소변을 보는 사이 내려놓았던 종이 뭉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원님인 이지광이 종이를 잃어버렸다는 곳에 나가보니 부근에 눈을 부릅 뜬 장승이 서 있었다. 이지광은 관원들에게 장승을 포박하여 밤새 지키라고 명했으나 관원들은 속으로 비웃으며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이지광은 관원들에게 벌로 종이를 바치게 한 뒤 그 가운데 도둑맞은 종이를 발견하고, 출처를 추적하여 범인을 잡았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각종 기록에서 원님의 이름을 달리하여 유사하게 반복되는 설화이지만, 『청구야담』에 이지광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아 뛰어난 지방관으로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학문과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