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85 |
---|---|
한자 | 金文起 |
이칭/별칭 | 김효기(金孝起),여공(汝恭),백촌(白村),마암(馬巖),충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선희 |
출생 시기/일시 | 1399년 - 김문기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426년 - 김문기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김문기 이조판서 재임 |
몰년 시기/일시 | 1456년 - 김문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31년 - 김문기 복권 |
추모 시기/일시 | 1778년 - 김문기 시호 내림 |
출생지 | 김문기 출생지 - 충청북도 옥천군 |
묘소|단소 | 사육신 묘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 |
사당|배향지 | 섬계서원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445-1 |
사당|배향지 | 오정각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29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관직 | 형조참판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역사공원에 가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김문기(金文起)[1399~1456]는 충청도 옥천에서 출생하였고,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자는 여공(汝恭)이며, 호는 백촌(白村)·마암(馬巖)이다. 처음에는 김효기(金孝起)로 이름하였는데 장인의 이름이 ‘효정(孝貞)’이어서 ‘문기’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관(金觀)이다. 아들 김현석(金玄錫)은 영월군수로 재직 중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죽은 아버지를 따라 순절하였다.
[활동 사항]
1426년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해 상복을 벗고 나서야 예문관 검열, 사간원 좌헌납 등의 관력을 이어갔다. 함길도 도진무를 거쳐 병조참의와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이조판서로서 성삼문·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육신역사공원에 가묘가 설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731년(영조 7)에 관직이 회복되고 1778년(정조 2)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렸다. 1791년(정조 15)에 정조는 단종을 위해 절개를 지킨 인물을 복권시키기 위해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만들었다. 이때 김문기와 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이 삼중신(三重臣)으로 정해졌다. 성삼문·박팽년·이개·유성원·유응부·하위지 등은 남효온의 『추강집(秋江集)』「사육신전(死六臣傳)」에 따라 사육신으로 정해졌다. 1791년(정조 15) 장릉배식단(莊陵配食壇)에 배향되었다. 1802년(순조 2)에 김문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김천의 섬계서원(剡溪書院)과 사육신공원의 의절사(義絶祠) 등에 제향되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건립된 정려각인 오정각(五旌閣)에는 김문기와 아들 김현석의 충신 정려와 김문기의 손자인 김충주, 김문기의 증손인 김경남, 김문기의 현손인 김약전의 효자 정려 등 5대에 걸친 충효 정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