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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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愍節書院 |
이칭/별칭 | 민절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건립 시기/일시 | 1681년 - 사육신 사우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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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91년(숙종 17) 9월 - 숙종에 의해 민절사 사액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92년(숙종 18) 1월 - 민절사에서 민절서원으로 개칭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고종 8) - 민절서원 훼철 |
현 소재지 | 민절서원 터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노량진동 152-3] 사육신묘지공원 |
원소재지 | 민절서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노량진동 152-3] 사육신묘지공원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에 있었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당한 사육신을 배향하기 위해 숙종 대에 건립한 서원.
[개설]
민절사(愍絶祠)라고도 한다. 사액받은 후 민절서원이 되었다.
민절서원은 조선 세조(世祖) 때 단종(端宗) 복위운동을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거나 자결한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을 배향한 대표적인 서원이다.
[위치]
민절서원은 지하철 9호선 노들역과 노량진역 사이에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로 191[노량진동 152-3] 사육신공원 내에 터만 남아 있다.
[변천]
1679년(숙종 5) 노량에서 숙종이 군대 사열을 하면서 영의정 허적(許積)의 요청으로 사육신의 묘에 봉식(封植)을 시행하게 되었다. 사육신에 대한 배향은 1676년(숙종 2) 충청도 홍주에서 육신사우(六臣祠宇)가 건립되면서 시작되었고, 1679년 사육신의 묘에 봉식이 시행되면서 추존 사업이 본격화 되었다. 이어서 같은해에 대구에도 육신사우가 건립되었고 1681년(숙종 7)에 민절서원의 터가 있는 당시 경기도 과천에 사육신 제향을 위한 사당인 사우(祠宇)가 건립되는 계기를 맞았다. 이때 과천 사림의 발의와 조정 관인의 청원이 모아져 사육신묘 옆에 사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1691년(숙종 17) 9월 숙종은 김포 장릉(章陵)에 행행(幸行)하던 중에 노량의 교장에서 군사 훈련을 참관한 후 사육신묘 옆에 있던 사당에 치제하게 되었다. 이때 숙종이 사우에 ‘민절(愍節)’이라고 사액까지 하도록 하여 민절사(愍節祠)가 되었다. 이듬해인 1692년(숙종 18) 1월에는 서원으로 고쳐 민절서원이 되었다. 이후 3월에는 고유제(告由祭)를 실시하였다.
[형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1871년(고종 8) 훼철되어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현황]
민절서원이 있던 자리에 6각 형태의 사육신묘비가 세워져 있고, 사육신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사육신에 대한 제향은 1978년 건립된 의절사에서 위패를 모시고 진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단종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의 충절을 상징하는 서원이며, 숙종부터 정조 연간에 있었던 대규모 충신 헌창 사업의 일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