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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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藏寺 大雄殿 甘露圖 |
영어공식명칭 | Nectar Ritual in Jijangsa |
이칭/별칭 | 호국지장사 대웅보전 감로탱,호국지장사 감로탱화,지장사 감로도,지장사 감로왕도,호국지장사 감로왕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제작 시기/일시 | 1893년 -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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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5월 19일 -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6호 지정 |
현 소장처 | 대한불교조계종 호국지장사 대웅보전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호국지장사 대웅전 |
원소재지 | 대한불교조계종 호국지장사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호국지장사 대웅전 |
성격 | 불화 |
작가 |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대우당(大愚堂) 능호(能昊)|문성(文性)|성언(性彦)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호국지장사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호국지장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6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호국지장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감로도.
[개설]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는 지장사 대웅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이며, 『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불교의 경전을 그림으로 해석한 것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위한 신앙내용을 그림을 그려 설명하고 있는 불화이며, 아귀나 지옥의 중생에게 감로미(甘露味)를 베푼다고 하여 감로왕도라고도 한다. 감로왕은 아미타불을 이르는 말로 아미타정토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대웅전 내부 아미타삼존상의 오른쪽 단에 지장보살도와 함께 걸려 있다.
1999년 5월 19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는 1893년(고종 30)에 제작된 불화로 가로 196.5㎝, 세로 150.3㎝의 면에 채색했다.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의 화면은 3단으로 구성되었다. 화면의 상부에는 칠여래(七如來)를 중심으로 오른쪽 구름 위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다. 화면 왼쪽에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을 그렸는데, 인로왕보살의 시선이 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신선들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어 독특하다.
중앙부에는 『우란분경』에서 7월 15일 승려 및 십방제불에게 흰쌀을 올리고 발원하는 의식인 성반의식(盛飯儀式)을 하기 위해 성반이 차려진 시식단(施食壇)과 2구의 아귀가 마주보고 있다. 시식단의 옆에는 의식을 집행하는 승려 무리가 병풍을 두른 채, 법고를 두들기는 등 악기를 들고 의식을 집전하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보통 감로왕도의 하단부에는 육도윤회(六道輪回) 하는 중생들이 묘사되는데, 이 불화에서는 하단부 왼쪽에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과 춤을 추고 있는 무리, 어부가 배를 저어 선착장에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호랑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하단부 오른쪽에는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하는 군사들의 모습, 기녀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한량, 소고(小鼓)를 들고 있는 악공들과 이에 맞춰 춤을 추는 남녀, 경상에 책을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 등이 묘사되었다. 그 위에는 불타고 있는 화목 위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의 모습을 통해 지옥장면을 묘사하였다.
[특징]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의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18세기에 유행한 감로도의 형식과 동일하다. 그러나 세부표현을 보면 일곱 여래의 장엄하면서도 원만한 얼굴과 옆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 성반의식을 하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과 산수의 표현 등은 19세기 초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나뭇잎 선의 처리, 산수의 음영처리 등에서 19세기 말의 불화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 장면 중 병풍이 둘러싸인 범패승의 장면, 오색 당번을 매단 제단의 모습, 수목을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그 안에 상·중·하단을 배치한 기법 등은 1832년 제작된 「수국사 감로왕도」와 유사하여 도상(圖像)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지장사 대웅전 감로도」는 염주를 든 남자가 앞장을 서고 소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일련의 무리와는 별도로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곡예를 하는 사람들이 표현된 점 등에서 18세기 감로도에서 보이는 특징이 확인된다. 19세기 불화에서는 구분하기 힘든 걸립패와 사당패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불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승려의 우두머리인 수화사(首畵士)인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가 경상도나 전라도 등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화사들과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약효는 전통불화를 기반으로 서양화법, 특히 명암법을 사용하여 구름이나 옷 주름 등을 표현했는데 「지장사 감로도」에도 이러한 화법이 나타나고 있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