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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촌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433
한자 銅雀村圖
영어공식명칭 Painting of Dongjak Vill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지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세기 - 「동작촌도」 제작
현 소장처 고려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5가 1-2]
성격 회화
작가 장시흥(張始興)
서체/기법 실경산수화
소유자 고려대학교 박물관
관리자 고려대학교 박물관

[정의]

조선 후기 화원 화가 장시흥이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동작나루 일대를 그린 그림.

[개설]

「동작촌도(銅雀村圖)」는 조선 후기 겸재 정선(鄭敾)[1676~1759]에게 화법을 배운 왕실의 화원(畵員) 화가 장시흥(張始興, 張時興)[1714~?]이 그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 작품 중 하나이다.

장시흥은 도화서(圖畵署) 화원 출신으로 호는 방호자(方壺子)이다. 동작나루와 마을의 한 귀퉁이를 포착하여 현장감 있게 그린 것이 인상적이다.

조선 시대 동작나루는 한양에서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오가는 길목이자 노량나루와 함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나루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자 만남과 헤어짐의 정서를 표현하는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시로 읊고 그림으로 그리는 대상이 되어 다양한 작품으로 그 모습이 남게 되었다.

[형태 및 구성]

「동작촌도」는 세로 21.6㎝, 가로 17.0㎝ 정도이며 종이에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엷은 채색을 더한 그림이다.

화면 우측상단에 ‘동작촌(銅雀村) 방호자(方壺子)’라는 묵서(墨書)와 함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어 장시흥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장시흥이 그린 또 다른 한강의 나루 그림인 「노량진도(鷺梁津圖)」와 함께 하나의 액자에 표구되어 있다. 2020년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특징]

「동작촌도」동작나루와 마을의 한 귀퉁이를 포착하여 현장감 있게 그려낸 실경산수화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우면산, 정박해 있는 배 앞으로 보이는 제법 크고 험준한 바위산은 과천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 주변으로는 기와집이 빼곡한 모습이 보인다. 한편, 바위산은 피마준(披麻皴)과 부벽준(斧劈皴)을 사용해 능숙하게 묘사하였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정선은 실경산수화 전통에 남종화법(南宗畵法)을 더하여 우리의 산천을 그리는 진경산수화를 개척하였고, 금강산을 비롯해 『장동팔경천(壯洞八景帖)』,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등과 같이 서울과 근교의 명소를 그렸다. 「동작촌도」 역시 장시흥이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영향을 받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문인들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던 수도 한양에서 산수를 즐기며 시를 짓고 감상하는 문예 활동을 펼쳤다. 이 중 진경산수화가 유행하는 가운데 이들의 활동 공간이 되었던 한양의 명승과 명소에 대한 실경이 산수화로 그려지게 되었다. 장시흥의 「동작촌도」는 겸재 정선이 즐겨 그린 한양에 대한 실경산수화가 점차 확산하는 가운데 그려진 작품이다. 특히 비교적 정선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한강 중 남호(南湖)에 속하는 동작나루의 실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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