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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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始興地區 戰鬪司令部 |
영어공식명칭 | Combat Command for Siheng zon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실 |
[정의]
6·25전쟁 초기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일대의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조직된 국군 사령부.
[개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고 4일째인 6월 28일 북한군 전차가 미아리방어선을 돌파하자, 국군은 한강을 연한 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미 지상군이 지원할 때까지 전선을 지연시킨다는 목적으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950년 6월 28일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당일 오전 육군본부를 수원농업시험장으로 이동시킨 후, 북한군의 남진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미 지상군의 투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위해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고, 광복군 출신이자 육군참모학교장인 김홍일을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내용]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시흥에 있는 병력을 수습하여 그 병력이 500명 선으로 채워지면 곧바로 ‘혼성제〇대대’로 명명하여 한강선으로 투입하였다.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김홍일은 제7사단장 유재흥을 혼성제7사단장으로, 수도사단장 이종찬을 혼성수도사단장으로, 제2사단장 임선하를 혼성제2사단장에 임명하고 안양천에서 광진교에 이르는 한강 남안 24㎞ 정면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하지만 조직된 혼성사단들은 연대 규모에 미치지 못한 병력도 있었고, 공용화기도 연대 당 박격포 2~3문, 기관총 5~6정에 지나지 않아 소총부대 수준이었다. 그러함에도 북한군의 한강도하를 6일간이나 저지하였고, 7월 4일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수원에서 평택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7월 1일자로 새로 임명된 육군총참모장 정일권은 부대들의 재편성을 통해 한미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7월 5일부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제1군단사령부가 되고, 그 예하 혼성 사단들도 개편되었다. 그리고 제1군단사령관으로 김홍일을 임명하여 중부전선의 방어를 준비하였다.
[의의와 평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서울이 함락된 6월 28일부터 6일간 북한군의 한강도하를 저지시키면서 미 지상군의 도착시간을 확보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또한 한미연합작전을 마련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의 업적과 관련해 2016년 12월 8일 서울 남부보훈지청은 금천구청 근린공원에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터’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하며, 시흥지구 전투사령부가 있었던 장소에 표지석을 건립함으로써 한강방어선 전투를 진행한 군인들의 공적을 선양하고 시흥지구 전투사령부의 의의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