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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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始興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식 |
[정의]
1895년부터 1988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존속하였던 경기도의 지방행정구역
[개설]
1914년에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동작구·영등포구·구로구·관악구의 일부와 경기도 안양시와 광명시의 일부를 관할구역으로 두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군포시·시흥시로 분할·해체되었다.
[내용]
조선 시대 1795년(정조 19) 현 서울특별시 금천구(衿川區)에 해당하는 금천현이 시흥현(始興縣)으로 바뀜으로써 ‘시흥’이란 행정명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음력 윤(閏) 5월 1일 칙령(勅令) 제98호에 의거해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 337군(郡)으로 개편하는 지방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현이 폐지됨에 따라 시흥현은 인천부(仁川府) 시흥군으로 승격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8월 4일 지방행정 체제가 재개편될 때,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로 변경되자 다시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일제 식민지시기 들어, 1911년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던 군청이 영등포읍(永登浦邑)으로 군청이 옮겨지면서 영등포가 시흥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변천]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한 조선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 제111호 「도(道)의 위치·관할구역과 부군(府郡)의 명칭·위치·관할구역」에 따라, 조선 시대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이 대폭 정리되었다. 이때 시흥군·과천군(果川郡)·안산군(安山郡)이 하나의 행정단위로 통합되어 시흥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로써 한말 이래 22개 면 162개 리였던 3개 군의 행정구역수가,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1916년 4월 24일의 경기도령 4호에 의거해 부·군이 통폐합됨으로써 시흥군은 9개 면 83개 리로 크게 줄었고, 군청 소재지는 북면(北面)의 영등포리에 두었다. 재편된 9개 면 가운데 북면만 종전의 두 개 군의 일부씩을 통합하였고, 나머지 군은 기존의 군 경계 안에서 2~3개의 면을 통폐합하였다. ‘시흥군’이란 명칭은 군청이 옛 시흥현 지역이었던 영등포에 들어서면서 채택되었다.
이후 1936년 4월 1일 시행된 부령(府令) 제8호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 개정」에 의거하여 경성부(京城府)의 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경성부에 인접한 시흥군의 일부[영등포읍과 북면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이렇게 북면에서 영등포면이 먼저 분리되어 경성에 편입되었고, 이어 북면도 경성부로 편입됨으로써 시흥군은 9개 면에서 8개 면으로 축소되었다. 이로써 현재의 사당동(舍堂洞)을 제외한 동작구(銅雀區) 전 지역이 경기도에서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경성부에 편입되지 않은 북부 잔여 지역은 동면(東面)에 흡수되었다. 1940년대 시흥군의 행정구역 변동에서는, 1941년 10월 1일 서이면(西二面)이 안양면(安養面)으로 개칭된 후 해방이 될 때까지 변동이 없었는데, 1942년 현재 8개 면 71개 리였다[군청은 경성부 영등포리에 소재]. 1943년에는 조선총독부령 1163호에 의거해 출장소제도가 폐지되고 구제(區制)로 개정되어, 현 사당동을 제외한 동작구 전 지역이 영등포구에 편입되었으며, 동의 명칭도 일본식인 정(町)으로 변경되었다. 이때 신길리(新吉里)와 번대방리(番大方里)를 합하여 신대방정(新大方町)이 되었다.
8·15해방 이후 1946년 정은 원래 동(洞)으로 환원하였으며,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159호에 의거해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경기도 시흥군 동면의 번대방리가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신대방동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가 행정구획을 대거 확장하면서 동면·신동면(新東面)이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관악(冠岳)출장소와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대통령령 6548호에 의거해 영등포구가 영등포구와 관악구로 분구(分區)하였는데, 이는 인구증가 추세 등을 고려하여 100만이 넘는 구를 분구하려는 방침에 따른 결과였다. 또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면서 시흥군에서 분리되었고, 이때 부천군(富川郡)이 해체되어 부천시로 승격하면서 소래면(蘇萊面)[지금의 시흥시 북부]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들어 관악구의 인구도 100만 명에 육박하자,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9630호에 의거해 관악구를 분구하여 동작구를 신설하였다. 이후 1981년 시흥군의 서면(西面) 지역 등이 광명시(光明市)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86년 안산군·과천군이 각각 시로 승격해 분리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은 의왕시(義王市)·군포시(軍浦市)·시흥시 등 신설되는 3개 시로 분할·조정되면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