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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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乙巳換局 |
이칭/별칭 | 을사처분(乙巳處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차인배 |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하였던 사충서원 배향인물들이 연루된 조선 후기 사건.
[개설]
을사환국은 1725년(영조 1, 을사년)에 단행된 정치 환국(換局)으로, 1721년부터 1722년까지 발생했던 신임옥사에 대하여 노론의 무고함을 판정한 일련의 정치적 처분을 말한다.
[역사적 배경]
경종대 신축, 임인년 옥사로 노론 4대신을 비롯한 노론세력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였으나,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제인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정국의 변화가 나타났다. 영조는 즉위한 을사년(1725)에 신축년과 임인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무옥(誣獄)으로 판정하는 이른바 을사처분을 단행했고, 이로써 소론을 축출하고 노론으로 정국을 구성할 명분을 마련하였다.
[경과]
영조는 신임옥사때 희생된 노론4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의 관작(官爵)을 회복시키고, ‘충(忠)’자가 들어간 시호(諡號)를 내리는 을사환국을 단행했다. 나아가 영조는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과천(果川)의 반계(盤溪)에 사우(祠宇)를 건립하였다.
[결과]
1727년(영조3)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 정권이 집권하면서 4대신이 또다시 역적으로 몰려 사우 또한 철폐되었지만, 1740년(영조16) 소위 경신처분(庚申處分)으로 4대신의 관작을 회복하여 신원되었다. 철폐된 사우는 소론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한 1755년(영조31)에 사충사(四忠祠)로 복설되었다. 사충서원(四忠書院)이 과천[노량진]에 건립된 이유는 ‘4대신이 모두 과천 땅에서 왕래하였고, 지역 유생들이 소원하였으며, 사육신의 서원과 지근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충서원은 대원군에 의한 서원 철폐 당시에도 존속했지만, 1927년 서원이 철도부지로 편입되면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보광리로 이건되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서원이 파괴된 후, 1968년 현재의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100-2에 이전하여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노론과 소론과의 극심한 대결구도는 영조의 즉위에 중요역할을 한 동시에 정치적 부담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 혼란스런 정국 상황의 발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