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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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黑石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차인배 |
[정의]
조선 전기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한강 남안 흑석진 나루에 설치된 수참.
[개설]
흑석참은 조선 시대 한강 남안 흑석진(黑石津) 나루에 설치된 수참(水站)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수참은 한강 물길을 이용하여 각 지역에서 수취한 미곡 등을 한양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로 조선 시대 조운(漕運)의 근간이다.
[관련 기록]
한강에는 광진, 송파진, 삼전도, 한강도, 서빙고, 동작진, 흑석진, 노량도, 용산진, 마포진, 서강진 등 20여 개의 나루가 설치되었고, 시기에 따라서 각 나루는 진(津) 혹은 도(渡)로 혼재되어 불리기도 하였다. 『속대전(續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에는 한강 나루 중 국가가 관리하는 진도를 11개소로 열거하고 있으나, 교통수요 등에 따라 그 수는 가감되었다.
[내용]
고려 말 1390년(공양왕 2)에 정몽주(鄭夢周)의 건의로 수참제도가 시행되었고, 조선 개창 후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
한강 수계 충주, 원주, 천녕, 양근, 광주, 과천, 금천 지역에 충주 금천참(金遷站), 강원도 원주 흥원참(興元站 혹은 興原站), 과천 흑석참 등 6~7개의 수참이 있었다. 이들 수참들은 미곡 등 물품의 보관창고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흥원창, 금천창처럼 창(倉)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 후기에 들어 조운이 민간 선박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일부 지역에서의 조세 납부가 면포 혹은 동전으로 대체되면서 수참의 역할은 축소되기에 이른다. 1779년(정조 3) 기록에 수참으로서 가흥창만이 확인되고, 1713년(숙종 39)의 기록에 금곡창 등의 수참을 혁파한 기록이 있어 원주 흥원창, 춘천 소양강창을 비롯하여 과천 흑석진 등은 더 이상 수참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배치 선박과 인원은 소멸되었다. 흑석진은 수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뒤 인근 동작진이 확대 개설되면서 나루로서의 기능도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