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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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南都護府 |
이칭/별칭 | 수주(樹州),부평(富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오기승 |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서쪽 부분에 해당되는 대방동, 신대방동, 상도동을 포함한 지역을 관할하였던 고려 시대 금주의 상위 지방행정구역.
[개설]
고려 시대의 도호부는 지방 통치의 거점으로서 설치되었다. 안남도호부는 고려 초 936년(태조 19) 후백제 멸망 직후 전주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고부와 영암으로 옮겼다가 다시 전주에 안남대도호부를 치폐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1150년(의종 4)에는 수주(樹州)를 안남도호부로 삼았다. 안남도호부 수주의 속현 중에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신대방동, 상도동을 포함하는 금주가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중국의 도호부는 본래 군사적 성격이 강한 변경지대의 행정기구였다. 여기에서 따온 고려의 도호부 역시 초기에는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되었다가 후에는 일반 행정기구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안남도호부 역시 초기에는 고려 초 통일전쟁 과정의 신규 정복지인 전주와 그 주변을 전전하였다가 12세기 중엽이 되면 수주로 옮기게 되었다. 다만 주변 지역의 계수관(界首官) 역할을 담당하던 여타 도호부와 달리 수주의 안남도호부는 소도호부로서 계수관의 역할은 수행하지 않고 속현을 관리하는 역할만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고려사』 권80, 지34, 식화3, 녹봉,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기 부평도호부,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9, 부평도호부에 안남도호부 관련 기사가 나타난다.
[내용]
고려의 마지막 안남도호부가 된 수주는 삼국 시대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장제군(長堤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고려 초에 수주로 개칭되어 995년(성종 14) 단련사를, 1018년(현종 9) 지주사를 두었다가 1150년(의종 4) 안남도호부를 두었다. 속현으로 금주(衿州), 동성현(童城縣), 통진현(通津縣), 공암현(孔巖縣), 김포현(金浦縣), 수안현(守安縣)을 두었는데,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서부 지역이 포함된 금주는 1018년(현종 9)에 수주에 내속되었으며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파견하도록 하였다.
[변천]
안남도호부 수주는 1215년(고종 2)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시켰는데, 1310년(충선왕 2) 여러 목(牧)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평부(富平府)로 강등되었다. 왕조 교체 이후인 1413년(조선 태종 13)에는 부평도호부로 개칭되어 다시 도호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수주의 안남도호부는 수도인 개경의 남쪽 지대에서 지방 통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려의 도호부는 시기가 지날수록 변경 군사기구보다 지방 행정기구로서의 역할이 강해졌는데, 이러한 흐름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 전국 각지에 다수의 도호부가 배치되었다. 안남도호부가 있던 수주는 조선 시대에 부평도호부가 배치되어 다시 도호부로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