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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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畿左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오기승 |
제정 시기/일시 | 1390년 - 경기좌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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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402년 - 경기좌도 폐지 |
관할 지역 | 경기좌도 - 서울특별시 동작구 |
관할 지역 | 경기좌도 금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신대방동|상도동 |
관할 지역 | 경기좌도 과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본동|흑석동|동작동|사당동 |
[정의]
고려 말에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한 왕도 근교 지역을 관할하였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경기(京畿)는 왕도의 외곽 지역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국내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경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인 1018년(현종 9)부터였다. 시기에 따라 영역의 조정을 거쳐 고려 말인 1390년(공양왕 2) 경기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390년(공양왕 2) 경기를 확장 재편하는 과정에서 이를 도(道) 단위의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제하고, 수도 개경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여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 이는 다음 해인 1391년 과전법을 실시하기 위한 사전 작업 중 하나로서, 과전을 비롯한 사전(私田)의 분급 지역을 경기 내로 한정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지리1, 왕경 개성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6, 경기조에 경기좌도 관련 기사가 있다.
[내용]
경기를 확장하여 좌우로 나누는 과정에서 장단(長湍)·임강(臨江)·토산(兎山)·임진(臨津)·송림(松林)·마전(麻田)·적성(積城)·파평(坡平)을 경기좌도로 하였다. 또한 문종 대의 제도에 의거하여 양광도(楊廣道)의 한양(漢陽)·남양(南陽)·인주(仁州)·안산(安山)·교하(交河)·양천(陽川)·금주(衿州)·과주(果州)·포천(抱川)·서원(瑞原)·고봉(高峯)과 교주도(交州道)의 철원(鐵原)·영평(永平)·이천(伊川)·안협(安峽)·연주(漣州)·삭녕(朔寧)을 좌도에 예속하도록 하였다. 이 중 금주와 과주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한다.
[변천]
조선왕조 개창 및 한양 천도 이후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좌우도의 영역을 재설정하였으며, 1402년(태종 2) 두 도를 합하여 경기좌우도라 칭하였다가 1413년(태종 13) 영역을 재조정하면서 좌도와 우도를 완전히 합하여 경기도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은 지속적으로 경기좌도 및 경기도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공양왕 대의 경기 확장 및 좌우 분할 과정에서 경기의 영역은 이전의 고려 문종 대와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으며, 조선 초에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하는 고려 경기의 동남 지역이 조선의 경기도 관할로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