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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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웅호 |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조선 시대 역사 개관.
[개설]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은 조선 초에 과주현(果州縣)에 속해 있었다. 과주현은 1394년(태조 3)에 경기좌·우도의 소속 고을을 개정할 때 좌도에 소속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단행된 읍호(邑號) 개정 때에는 고을명이 과천(果川)으로 바뀌었다. 과천현은 1414년에 금천현(衿川縣)과 합쳐져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어 달 만에 환원되었고, 1456년(세조 2)에도 금천현에 통합되었다가 몇 년 지나지 않아 과천 백성들의 호소에 따라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편 때 과천군(果川郡)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시대에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은 과천현의 상북면과 하북면에 속해 있었다. 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과천현 상북면과 하북면에는 각각 573호 2,529명과 583호 2,142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 이 지역에는 노량나루와 동작나루[동재기나루]가 있어 인적 왕래와 물류 운송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한양과 삼남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던 효사정을 비롯하여 양녕대군 이제 묘역, 정조가 화성 행차 때 잠시 머물 공간으로 건립한 용양봉저정(龍驤鳳䎝亭), 사육신을 모시는 민절(愍節) 서원,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모시는 사충(四忠) 서원, 박태보(朴泰輔)를 모시는 노강(鷺江) 서원 등이 세워져 있었으며, 사육신과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昌嬪) 안씨, 조석견, 이정영, 동래 정씨 등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