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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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Dongjaeginaru |
이칭/별칭 | 동작나루,동작진,동재기 나루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31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현위 |
소재지 | 동재기나루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3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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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나루터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을 지나는 한강에 있던 나루터.
[개설]
동재기나루는 조선 시대 서울에서 과천, 수원, 평택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였다.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해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한자명으로는 동작진(銅雀津)이라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과천현에는 “동작진은 북쪽으로 18리에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반포주공1단지아파트 서편 반포천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한양과 삼남지방을 이어주던 동재기나루는 인근 노들나루와 함께 한강 수운의 주요 지점으로 번성하였다.
[변천]
노량진 관할 하에 있었던 동재기나루는 호남·호서 지방의 과객과 사대부의 왕래가 빈번한 교통의 요지였으나 사선 몇 척 만이 운용되어 한동안 교통이 불편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계기로 나루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자 별장(別將)을 파견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는 노량진의 나룻배 3척을 이관함으로써 나루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857년(철종 8)에 철종은 이곳에 주교를 만들어 인릉을 찾기도 하였다. 동재기나루는 1917년 한강인도교가 세워지면서 기능이 약화되었고, 1984년 동작대교가 개통되면서 동재기나루는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았다.
[현황]
동재기나루는 현재 동작동 316-1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었으며, 지하철 4호선 동작역 4번 출구 앞 보도에 ‘동재기나루터’ 표석이 남아 있다. 표석에는 ‘수원 이남 삼남[충청, 영남, 호남]지방과 서울[漢陽]을 이어주던 나루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현재 인근 지역은 올림픽대로와 지하철 4호선, 현충로 등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나 지나치는 곳으로의 인식이 강한 편이라 상권과 주거지역은 거의 발달해 있지 않다. 북쪽으로는 동작대교를 건너 용산구 이촌동, 남쪽으로는 이수역과 사당역으로 연결되며 서쪽으로는 흑석동, 동쪽으로는 서초구 구반포 지역과 연결된다.
[의의와 평가]
동재기나루는 과거 한양과 삼남지방을 연결해 주던 동작구의 중요한 역사문화 자산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1980년 관악구에서 동작구가 분구할 당시 ‘동작구’ 이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장소이다. 동작구의 노래인 「동작찬가」[정은영 작사, 조운파 작곡] 가사에도 등장을 할 정도로 동작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