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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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熏, 인도교를 건너 萬歲를 외치다 |
영어공식명칭 | Shim Hoon, Shout hooray across the Han River Bridg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혜원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이었던 심훈의 이야기.
[개설]
심훈(沈熏)[1901~1936]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났으며, 일제 강점기에 『상록수』, 『영원의 미소』, 『황공』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영화인이다.
[소년 심훈,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한강 인도교를 건너다]
심훈(沈熏)은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신복면 흑석리[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났다. 심훈은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언론인이면서 영화감독이자 주연 배우로 활약하였다.
심훈은 1915년 경성제일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과 혼인하였다. 경성제일 고등보통학교에 입한 한 후 소격동 고모 댁에서 기숙하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집에 갔었다. 처음에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역에서 기차 통학을 하다 1917년 한강 인도교가 완공되면서 한강 인도교를 건넌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여 한강 인도교를 건너 남대문 역전에서 만세 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퇴학까지 당하였다. 이때 심훈은 옥중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을 써서 훗날 발표하였다.
[심훈, 중국 망명길에 오르다]
퇴학 당한 심훈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에 체류하다 상해, 남경을 거쳐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심훈이 중국으로 간 목적은 기회를 노려 미국이나 프랑스로 연극을 공부하러 가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북경에서 우당 이회영과 단재 신채호를 만나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되어 진로를 변경하였다. 이회영과 신채호는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는 절대 독립론을 제창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무장투쟁론을 펼친 인물들이다. 훗날 심훈은 신채호가 일제 경찰에 잡혀 여순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 생각」이라는 시를 짓기도 하고, 단재가 끝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16년 전 만났던 애틋한 마음을 담아 「단재와 우당」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남긴다.
[심훈, 연극과 영화에 빠져들다]
심훈은 3년 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 집필 등에 몰두하였고, 최승일 등과 신극연구단체 극문회를 조직하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였다. 1925년 조일제 번안의 이수일과 심순애로 유명한 「장안몽」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 역으로 출연하였다. 1925년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26년 육십만세 사건에 연루되어 동아일보에서 퇴사하게 된다.
1927년 영화 공부를 위해 도일하였다 6개월 후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다. 「먼동이 틀 때」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 영화의 원제목은 「어둠에서 어둠으로」이었으나 검열에 걸려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 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심훈은 이후 다수의 시와 40편 이상의 영화평론도 발표하였으며, 『상록수』 역시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심훈이 장티푸스로 사망하면서 중단된 영화 「상록수」는 이후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작품화된다. 신상옥 감독[1941]과 임권택 감독[1978]이 메가폰을 잡은 두 편의 영화 「상록수」는 소설 『상록수』 못지않은 사랑을 받는다.
심훈은 1926년 8월부터 ‘라디오드라마연구회’에도 참여한다. 1927년 5월에 노르웨이 유명한 극작가 입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입센의 「인형의 집」, 「유령」이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이때 심훈은 입센의 생애를 드라마 시작 전에 발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심훈, 소설 『상록수』로 이름을 날리다]
심훈은 소설 『상록수』가 대표작이지만, 그에 앞서 쓴 소설이 몇 편 더 있다. 영화 「먼동이 틀 때」가 성공한 이후 심훈의 관심은 소설 쪽으로 기울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의 애인」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하게 된다. 「동방의 애인」은 심훈 자신의 중국 망명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주인공 김동렬과 강세정은 유명한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심훈의 친구이기도 했던 박헌영과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주인공 김동렬이 혁명에 성공한 모스크바를 ‘꿈과 희망의 도시’로 그린 게 검열에 걸렸다. 이어 『조선일보』에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 당하였다. 이번에는 일제에 맞선 옥중투쟁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1933년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단편소설 『황공의 최후』를 탈고하였다. 1934년 장편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으며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연재되었다.
심훈의 대표작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 역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인 최용신은 실제로 안산 샘골에서 야학을 운영하다 1935년 1월에 과로로 숨진 농촌계몽운동가이다. 남자 주인공 박동혁은 심훈의 조카로 당진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벌이던 심재영의 모델이었다고도 하고, 최용신의 약혼자 김학준이 모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방의 애인』·『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 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심훈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 정신, 그리고 대지에 뿌리를 박고 새로운 생활을 열고자 하는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다. 이는 심훈의 체험기인 동시에 대표작 『상록수』의 전신이기도 하다.
[시인 심훈, 고향 흑석동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 「고향은 그리워도」를 짓다]
심훈은 1932년 그동안 써두었던 미발표 시인 「필경」, 「그날이 오면」, 「한강의 달밤」, 「풀밭에 누워서」, 「소야악」, 「첫눈」, 「선생님 생각」, 「마음의 각인」, 「고향은 그리워도」 등을 모아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판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검열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 결국 시집 『그날이 오면』은 심훈 사후인 1949년에 출판된다.
「고향은 그리워도」에는 흔적도 없이 변모해 버린 흑석리 고향 집을 그리는 애틋한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내 고향을 가지를 않소.
쫓겨난 지가 10년이나 되건만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소,
멀기나 한가, 고개 하나 넘어연만
오라는 사람도 없거니와 무얼 보러 가겠소?
개나리 울타리에 꽃 피던 뒷동산은 허리가 잘려
문화주택이 서고, 사당 헐린 자리엔
신사가 들어앉았다니,
전하는 말만 들어도 기가 막히는데
내 발로 걸어가서 눈꼴이 틀려 어찌 보겠소?
나는 영영 가지를 않으려오.
오대(五代)나 내려오며 살던 내 고장이언만
비렁뱅이처럼 찾아가지는 않으려오
후원(後苑)의 은행나무나 부둥켜 안고
눈물을 지으려고 기어든단 말이요?
어느 누구를 만나려고 내가 가겠소?
잔뼈가 긁도록 정이 든 그 산과 그 들을
무슨, 낯짝을 쳐들고 보드란 말이요?
번잡하던 식구는 거미같이 흩어졌는데
누가 내 손목을 잡고 옛날이야기나 해줄 상 싶소?
무얼 하려고 내가 그 땅을 다시 밟겠소?
손수 가꾸던 화단 아래턱이나 고이고 앉아서
지나간 꿈의 자최나 더듬어 보라는 말이요?
추억의 날개나마 마음대로 펼치는 것을
그 날개마저 찢기며 어찌 하겠소?
이대로 죽으면 죽었지 가지 않겠소
빈손 들고 터벌터벌 그 고개는 넘지 않겠소
그 산과 그 들이 내닫듯이 반기고
우리집 디딤돌에 내 신을 다시 벗기 전엔
목을 매어 끌어내도 내 고향엔 가지 않겠소
심훈의 고향이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의 ‘개나리 울타리에 꽃피던 뒷동산’은 문화주택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효사정 자리에는 일본 신사[한강 신사 또는 웅진 신사]가 서 있다. 그래서 심훈은 고향에 대한 실망감을 절절하게 표현하면서 ‘고향은 그리워도 내 고향엔 가지 않겠소’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반어법을 사용해서 ‘해방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겠소’라는 굳은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고향은 그리워도」에는 해방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영화인, 심훈]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 9월 12일 태어난 심훈은 1936년 9월 16일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영화인인 심훈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통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 서울특별시 동작구를 빛낸 인물로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