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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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orean traditional totem pole at the village entrance punishes Byeongangso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홍인숙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었던 대방장승이 장승을 땔감으로 쓴 변강쇠를 응징한 이야기.
[개설]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과 노량진동의 경계 지역인 장승백이는 대방장승이 서 있었던 곳으로, 대방장승은 조선 후기 실전 판소리 중 하나인 「가루지기타령」, 또는 「변강쇠가」에 등장하는 장승들의 우두머리이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서 변강쇠는 땔감 대신 지리산의 장승을 베어서 화목(火木)으로 쓰는데,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대방장승은 전국 팔도의 장승을 불러 모아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한강변인 새남터에서 장승 회의를 하고 강쇠의 온몸에 수백 가지 병이 나게 하여 죽게 만든다.
[장승의 민속학적 의미와 금기]
장승은 나무를 깎아 세운 기둥, 즉 입목(立木)으로 머리 부분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놓은 인면두각(人面頭刻)의 목주(木株)이다. 대개 부리부리한 눈코입에 과장된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장승을 세우는 풍습은 원시 사회의 부락 수호신인 솟대에서 전이된 것으로 북쪽 지역에는 나무로 만든 장승을, 남쪽 지역에는 돌로 만든 장승을 주로 세웠다. 장승의 기능은 부락과 마을 공동체를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신격이거나 ‘경계 표지, 이정표’의 역할이었다. 장승은 마을과 공동체의 경계를 표시하며 그 안위를 지켜준다는 상징성과 공공성을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장승백이 대방장승의 유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장승백이 지역은 조선 시대부터 인가가 드물고 낮에도 맹수가 나타날 만큼 산림이 울창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정조의 수원 능행을 위한 여정 중에 왕의 어가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서 한 번쯤은 쉬어가야 하였다. 때문에 정조는 대낮에도 침침할 정도로 한적하고 으슥한 이 언덕에서 행차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장승’을 만들어 경계를 표시하고 인근을 관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어명을 받아 만들어진 장승은 다른 장승들과는 다른 것으로 인식되어 ‘대방장승’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장승이 있는 동네를 일반적으로 가리키던 보통명사 ‘장승백이’도 특별히 상도동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의 주요 내용]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서 ‘가루지기’는 ‘가로로 멘다[횡부(橫負)]’의 의미로, ‘송장을 지게에 메는 것’을 뜻한다. 흔히 「가루지기타령」은 변강쇠와 옹녀라는 두 인물의 과도한 성적 욕망과 성애의 묘사가 중심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전반부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후반부의 주요 내용은 강쇠의 갑작스러운 질병과 죽음, 죽음의 연쇄적 전염, 상을 치르는 과정에서의 시체 부착(附着)과 접지(接地)라는 그로테스크한 사건들로 이어지며, 그 모든 사건의 시작점은 바로 강쇠가 ‘장승의 신성을 모독’하고 땔감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금기’를 위반하였다는 사실이다. 「가루지기타령」의 주요 서사 단락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상부살(喪夫煞)이 있는 옹녀가 혼인마다 남편을 잃고 마을에서 쫓겨난다.
② 옹녀가 강쇠를 만나 도방살이를 시작한다.
③ 강쇠의 게으름 때문에 지리산 산중으로 옮겨 살기로 한다.
④ 나무를 해오라고 하자 강쇠가 장승을 패어 와 옹녀의 만류에도 땔감으로 쓴다.
⑤ 장승들이 분노하여 회의를 열고 강쇠의 온몸에 병을 준다.
⑥ 강쇠가 만 개 병을 얻어 하룻밤 새 급살로 죽으며 옹녀에게 개가하지 말 것을 유언한다.
⑦ 옹녀가 치상해주는 이와 살겠다고 하자 중, 초라니, 풍각쟁이패가 송장을 치워주려다가 죽는다.
⑧ 뎁득이가 각설이패와 함께 치상하려다가 송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⑨ 굿을 하여 간신히 시체들이 떨어졌으나 강쇠의 송장은 그대로이다.
⑩ 뎁득이가 등에 붙어있는 강쇠의 송장을 동강내고 절벽에 갈아버린 후 떠난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의 ‘장승 패는 대목’의 주요 서사]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의 전체 서사 중에서도 ‘장승 화소가 나타나는 대목’의 서사적 전개만 따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강쇠가 나무하러 갔다가 장승을 뽑아 와서 군불을 땐다.
② 불태워진 장승 목신(木神)이 대방장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
③ 전국 장승 회의에서 강쇠의 처벌 방법을 공론한다.
④ 장승들이 강쇠에게 온갖 병으로 치죄(治罪)한다.
강쇠는 나무를 하러 갔다가 하루종일 잠을 자고는 나무를 벨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강쇠는 ‘오동나무, 살구나무, 솔나무, 잣나무, 홍도나무, 버드나무, 밤나무, 전나무’ 등 모든 나무에 함부로 벨 수 없는 나무들만의 내력이 있다는 내용의 「나무타령」 노래를 부르고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장승을 패어가야겠다고 말한다. 다음은 강쇠가 장승 앞에서 서서 패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지게를 찾아 지고 장승 선 데 급히 가니 장승이 화를 내어 낯에 핏기 올리고서 눈을 딱 부릅뜨니 강쇠가 호령하여 네 이 놈 뉘 앞에다 색기하야 눈망울 부릅뜨니 삼남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과거 마전 파시평과 사당놀음 씨름판에 이내 솜씨 사람 칠 제 선취북장 후취덜미 가래딴죽 열두권법 범강장달이라도 다 둑 안에 떨어지니 수족 없는 너만 놈이 성심이나 바울소냐. 달려들어 불끈 안고 엇둘음 쑥 베내여 지게 위에 걸머지고 …… 진 충신 개자추는 면산(綿山)에 타서 죽고 한 장군 기신이는 영양에서 타 죽어 참 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을 가져 쓴들 패어 때어 관계한가.”
강쇠는 장승의 ‘눈 부릅뜬’ 표정을 보면서도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호령을 하며 자신이 ‘마전과 씨름판’에서 싸움 잘하는 한량으로 소문났던 과거를 자랑하며 ‘수족없는 너만 놈에게 지겠느냐’라고 모욕을 퍼붓는다. 또한 집에 돌아와서 옹녀가 장승을 베어 온 강쇠를 보고 어서 제자리에 갖다 두고 진언 치고 다른 길로 돌아오라고 수습책을 알려주는 말에도 오히려 역사상 인물들을 예로 들며 ‘진짜 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일 없었는데 나무 인형 때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며 역정을 낸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 나타난 장승 회의 장면과 강쇠의 죽음]
장승에 대한 이러한 강쇠의 부정적인 태도는 장승 신들의 분노를 야기한다. 대방장승은 강쇠의 징치를 위하여 조선에 있는 장승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약한 밤’에 모이도록 하며, 그날 강쇠를 처벌할 방식을 의논한다.
“강쇠 놈에 저리 많은 식구들이 정한 곳 없이 달려들면 많은 데는 축이 들고 빠진 데는 틈 날테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 전라, 경상 [장승이] 차지하고 겨드랑서 볼기까지 황해, 평안 [장승이]차지하고 …… 강쇠에게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병 도배를 한 연후에 아까같이 흩어진다. 그날 저녁 일과하고 한참 곤케 자느라니 천만의외 온 집안이 장승이 장을 서서 몸 한번씩 건드리고 말이 없이 나가거늘 강쇠가 깜짝 놀라 말하자니 안 나오고 눈 뜨자니 꽉 붙어서 만신을 결박하고 각색으로 쑤시는데 제 소견도 살 수 없어 …… 이를 꽉 아드득 물고 미음 들어갈 수 없고 낭자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 들을 수가 없다. 병 이름을 짓자 하니 만 가지가 넘겠구나. 풍두통, 편두통, 염결통 겸하고, 쌍다래끼 석서기 청맹을 겸하고 이농증 이명에 귀젓을 겸하고 ……”
장승을 모욕한 강쇠에게 주어진 처벌은 가혹하였다. 장승 회의를 주재한 대방장승은 각 도의 장승들에게 강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틈도 빈 곳이 없게’ 병이 나도록 철저히 지휘한다. 장승을 패어 군불을 지핀 강쇠는 그날 밤 갑자기 장승들이 방안 가득 들어서서 자기 몸을 한 번씩 건드리고 나가는 환영을 보고는 곧장 온몸에 피고름을 흘리는 급환을 얻게 되고 ‘만 가지가 넘는 병’을 얻어 날이 밝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 나타난 대방장승 이야기의 의미]
서울특별시 동작구 장승백이에 있는 대방장승은 하층 유랑민인 강쇠에게 지독한 벌을 내리게 하는 장승회의의 우두머리이다. 대방장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강쇠가 장승에 대한 금기를 깼기 때문이다. 장승은 액이나 질병을 막아주는 신앙의 대상이며 외부인의 침입을 막아주고 마을 공동체의 영역을 표시하는 수호신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장승을 베고 장작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신성의 훼손이자 공동체의 질서에 대한 교란과 도전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강쇠가 장승의 수호신적 의미나 공동체의 질서를 상징한다는 의미를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장승 훼손을 감행한 이유는 그들의 계층성에 기인한다. 강쇠와 옹녀의 사회적 위치는 마을에 속한 정주민(定住民)이 아니라 떠돌아 다니면서 살아야 했던 하층 유랑민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유랑민 연예집단인 남사당패는 공연을 허락받기 위해 보통 동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온갖 재주를 보이곤 했는데 이런 마을 경계에 서있는 것이 바로 장승이었다. 정착지 없이 떠돌아야 했던 하층 유랑민들에게 장승은 곧 자신들의 진입을 허락하거나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심리적 경계심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서 대방장승이 장승 회의를 통하여 강쇠를 응징한 의미는 사회적 체제와 질서에 도전을 일으킨 타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공동체의 규율이라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의 대방장승은 전국 팔도 장승들의 우두머리로서, 마을의 수호신이자 공공의 질서, 관권, 사회의 지배체제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그러한 사회의 질서 체제를 위반한 존재를 응징하는 권위를 가진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