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모여 생활을 이루는 취락 지역을 이르는 순 우리말. 한자로는 동(洞)·리(里)·촌(村)으로 불리는데, 동(洞)이 행정 구역명으로 사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부터였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속하는 마을로는 현재 도봉동·쌍문동·창동·방학동이 있으며 이는 선사 이래로 형성되어온 자연 마을이 국가의 행정 구역 설정에 의해 신설·통합·편입되면서 지금의 마을로 이...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쇠죽골은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마을로 주막과 민가 약 20호가 있었다. 쇠죽골은 양주에서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 위해 올라온 소 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쑤어 먹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여물골이라고도 하였다. 쇠죽골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해등천·계성동 등 자연 마을과 합쳐져 뒤에 쌍문...
조선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조선시대 양주목 해등촌면은 그리 큰 행정 구역이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으로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강북구 등 도봉구 인근 지역은 일부 한성부(漢城府)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도봉구 지역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인 성저(城底) 약 3.93㎞[10리]와 이웃한 양주목 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2동에 있던 자연 마을. 소군내라는 하천의 깨끗한 물이 해등천(海等川)을 거쳐 방학동으로 흘렀는데, 물이 바닷물처럼 맑아 해등천이라고 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해등천이 생겨난 시기와 변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쌍문동은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통합되어 노해면이 설치되었을 때 소라리와 계성리 등이 통...
조선 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해등촌면(海等村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였다. 지방 행정 체계로서 면(面)은 이미 고려 말부터 등장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비되어 성문 법전을 통해 규정되는 때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