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목
-
도봉구를 포함하는 양주목이 수록된 개항기의 경기 지역 읍지. 「양주목 읍지(楊州牧邑誌)」는 경기도 소관 각 군현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인 『경기 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경기 읍지』에 수록된 다른 읍지와 마찬가지로 「양주목 읍지」 또한 말미에 당시 목사의 착성(着姓)[행목사 김(行牧使 金)]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양주목에서 읍지를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읍지는 인...
-
도봉구를 포함하는 양주목이 수록된 조선 후기의 지리지. 『경기지(京畿誌)』는 경기도 소관 각 읍에서 작성한 읍지 34부를 모아 4책으로 묶은 통지(統誌)이다. 수록된 일부 읍지에 ‘도광(道光) 22년’ 또는 ‘도광 23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42년(헌종 8)~1843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지』에 포함된 각 군 읍지의 항목 차이, 동일 항목에서의...
-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양주목이 표시된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로 각 도별 지도 및 군현별 지도,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廣輿圖)』「경기도(京畿圖)」는 서울과 경기도의 지도로 경기도 소관 군현과 주요 산천, 도로 등이 표시된 지도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
-
도봉구를 포함하는 양주목이 수록된 조선 전기의 인문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1530년(중종 25)에 왕명으로 편찬한 관찬(官撰) 지리지로, 앞서 양성지(梁誠之),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등이 1481년(성종 12)에 왕명으로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중수(重修)한 것이다. 1611년(광해군 3)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현...
-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양주목이 표시된 『여지도』의 경기도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책이다. 그 가운데 『여지도(輿地圖)』「경기도(京畿圖)」는 서울과 경기도 소속 군현, 주요 산과 고개, 왕릉과 서원 등을 간략하게 나타낸 지도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정확한 제작 연도...
-
도봉구를 포함하는 양주목이 수록된 조선 후기의 전국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 사이에 편찬된 전국 읍지이다. 총 55책으로 313개 군현의 읍지가 수록되었다. 각 읍지 앞에는 채색 지도가 배치되어 있다. 『여지도서』는 지방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묶어서 편차(編次)한 것이다. 『여지도서』의 편찬 경위는 『영조실록(英祖實錄)...
-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조선 후기의 양주목 지도. 『지승(地乘)』은 주요 군사 요지와 전국 군현을 그린 회화식 지도책이다. 총 6책으로 1책 경기도, 2책 충청도, 3책 경상도, 4책 전라도, 5책 평안도 및 황해도, 6책 함경도 및 강원도를 수록하고 있다. 전반적인 지도의 내용, 구도 등의 요소로 미루어 『해동 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
-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조선 후기의 양주목 지도. 『해동 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弘文館)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한 형태로 당시 정책 결정의 차원에서 활용하였다. 『해동 지도』는 관찬 지도로서 국가 차원에서 정책 결정 등에 활용되었다. 이 지도의 일부는 비변사(備邊司)에서...
-
도봉구의 옛 지명인 해등촌면의 호구가 기록된 18세기 후반의 호구 통계집. 『호구총수(戶口總數)』는 18세기 후반 전국의 호구(戶口) 현황을 기록한 일종의 통계집이다. 조선 전기 3개 식년(式年)과 1639년(인조 17) 이후의 호구총수를 모아 두었고 마지막 식년은 1789년(정조 13)이다. 2책 이하에서는 각 도별 호구 기록을 기재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한성부가 전국의 호구...
-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명이 견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898년(효공왕 2) 2월에 궁예(弓裔)가 휘하 장수인 왕건(王建)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이 지역...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京畿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해 있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도봉구에 해당하였다. 본래 경기(京畿)는 왕도(王都)와 그를 둘러싼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京)’은 천자의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기(畿)’는 그를 둘러싼 지역을...
-
도봉 지역과 관련되어 제작된 각종 문헌 자료. 고서(古書)와 고문서(古文書)는 연구자에 따라 정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고서는 옛 사람이 만든 서책(書冊) 형태의 자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문서 발급자와 수신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고받는 글로 정의할 수 있다. 도봉 지역과 관련된 고서와 고문서 가운데 관청에서 제작하거나 관청으로 발송한 공문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1910년...
-
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
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장시.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누원(樓院)의 인근에 생겨난 장시(場市)를 말한다. 조선 후기 이 지역에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을 살려 서울 인근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장시가 생겨났고 상업이 번창하였다. 누원점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번지에 있었다. 누원점(樓院店)이 있었던 지역 인근에 누원이 있었다. 누원...
-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봉산은 북한산 국립 공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우이령(牛耳嶺)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북한산(北漢山), 즉 삼각산(三角山)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사패산(賜牌山)이 연이어 솟아 있다. 도봉산 명칭의 유래는 산 전체가 큰 바윗길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스승인 무학 대사(無學大師)가 조선 왕조 창업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 시대 양주목의 하위 행정 체제. 조선 시대에는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다. 이 부·목·군·현은 각각의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몇 개의 면(面)으로 구분하고, 다시 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다. 면리제(面里制)는 여말 선초 사회 변화기에 군현 하부의 촌락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배를 위해 실시한...
-
1858년 작성된 현재의 도봉구 지역인 해등촌에 살았던 안만길의 준호구. 준호구(準戶口)는 일반 백성의 필요에 대응하여 관에서 보관하는 호적에 의거하여 발급하는 문서이다. 현대의 호적 등본이나 주민 등록 등본의 성격을 갖는다. 준호구는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발급하는 공문서이다. 일반 백성은 각종의 필요에 따라 준호구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소송, 성적, 노비...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한 역인(役人). 1852년(철종 3)과 1858년(철종 9) 양주목에서 안만길(安萬吉)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2부가 남아 있어 안만길의 가계와 활동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준호구에 따르면 안만길은 본관이 순흥으로 아버지는 안성남(安成男), 할아버지는 안엇금(安旕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선학(安善學)이다. 외할아버지는 본관이 전주인 이...
-
1852년 작성된 현재의 도봉구 지역인 해등촌에 살았던 안만길의 준호구. 준호구(準戶口)는 일반 백성의 필요에 대응하여 관에서 보관하는 호적에 의거하여 발급하는 문서이다. 현대의 호적 등본이나 주민 등록 등본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준호구는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발급하는 공문서이다. 일반 백성은 각종의 필요에 따라 준호구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소송, 성적...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했던 역인(役人). 1861년(철종 12) 양주목에서 안장손(安長孫)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가 남아 있어 안장손의 가계와 활동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준호구에 따르면 안장손은 본관이 순흥(順興)으로 아버지는 안동이(安同伊), 할아버지는 안귀복(安貴福)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엇금(安旕金)이다. 외할아버지는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미대(金味大...
-
1861년 작성된 현재의 도봉구 지역인 해등촌에 살았던 안장손의 준호구. 준호구(準戶口)는 일반 백성의 필요에 대응하여 관에서 보관하는 호적에 의거하여 발급하는 문서이다. 현대의 호적 등본이나 주민 등록 등본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준호구는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발급하는 공문서이다. 일반 백성은 각종의 필요에 따라 준호구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소송, 성적...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
1770년 현 도봉구 지역을 다스렸던 양주목사 윤면동이 작성한 해유문서. 조선 시대에는 관원이 교체되었을 때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에 그 소관 업무를 인수인계한 후 이를 상급 기관에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이 절차를 해유(解由)라 한다. 지방 수령의 경우, 관할 구역 내의 관아·서원 및 향교에 이르기까지 각종 건물 및 물품에 대하여 인수받았을 당시로부터 현재까지의 내역을 기록하여 인수...
-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속한 양주목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 시대 교통 및 통신 시설. 역(驛)은 원(院)과 함께 전근대 시기 도로에 설치된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삼국과 통일 신라 시대부터 역이 설치되었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몇 차례의 정비를 거치면서 역제(驛制)가 더욱 발달하여 전국 규모의 역로(驛路)가 조성되고 운영되었다. 양주목에는 노원역과 녹양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산업 중 여객 및 화물의 수송을 담당하는 업종. 운수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사람이나 짐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일을 큰 규모로 하는 사업이다. 운수업에는 육상 운수업, 해상 운수업, 항공 운수업이 있으며, 육상 운수업은 다시 철도 운수업과 자동차 운수업으로 나눌 수 있다. 도봉구는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에 속해 있어 서울과 의정부 지역을 연결하는 지역이었다. 서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교통 및 숙박 시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속해 있었고, 해등촌면이 도봉구의 전신에 해당한다. 해등촌면에는 조선 시대 도로망에서 역(驛)과 함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 원(院)으로 누원이 있었다. 원은 주로 역과 역 사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공무상 여행 중인 관원과 지방 수령이 여정에서 숙박할 수 있...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의립(義立), 자는 지중(止中), 호는 월담(月潭).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윤정림(尹廷霖)이고, 할아버지는 현령 윤희렴(尹希廉)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윤국형(尹國馨)이며, 어머니는 경력(經歷) 조수(趙琇)의 딸인 평양 조씨이다. 첫 번째 부인은 군기시 정(軍...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초(有初), 호는 쌍호당(雙壺堂). 성종의 아홉째 아들인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 이제형(李齊衡)이며, 어머니는 남두명(南斗明)의 딸이다. 부인은 좌랑(佐郞) 이유원(李有源)의 딸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이단석(李端錫)[1625~1...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전주 이씨 회산군 묘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고조할아버지는 성종과 숙의 홍씨(淑儀洪氏) 사이의 다섯째 아들이었던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이다. 회산군이 슬하에 아들을 보지 못하자 동생 견성군(甄城君)의 둘째 아들 계산군(桂山君) 이수계(李壽誡)로 후사를 잇게 되니, 계산군 이수계가 이무립의 증조할아버지이다. 계산군은 풍성...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5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임실 현감 이회(李薈)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순릉 참봉 이지백(李之白)이며, 할아버지는 현릉 참봉 이광윤(李光胤)이다. 아버지는 상주 영장 이홍저(李弘著)이다. 이봉상(李鳳祥)[1676~1728]은 세 번 장가들었는데 수사...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동각(東閣). 아버지는 사직서령(社稷署令)을 지낸 이탕(李宕)이며, 지중추부사 이정암(李廷馣)의 아우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이정형(李廷馨)[1549~1607]은 1568년(명종 23) 증광시 갑과 2위로 급제하였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땅에서 형성되는 가시적·비가시적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함한다...
-
조선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조선시대 양주목 해등촌면은 그리 큰 행정 구역이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으로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강북구 등 도봉구 인근 지역은 일부 한성부(漢城府)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도봉구 지역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인 성저(城底) 약 3.93㎞[10리]와 이웃한 양주목 소...
-
1895년 5월부터 1896년 8월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이 소속된 양주군의 상위 행정 기관.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을 23개의 부(府)로 개편하면서 한성과 인근 10개 군(郡)을 합쳐 한성부(漢城府)로 편성하였는데, 이때 양주군도 한성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부 13도제(道制) 시행으로 경기도가 부활하면서 양주군은 다시...
-
조선 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해등촌면(海等村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였다. 지방 행정 체계로서 면(面)은 이미 고려 말부터 등장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비되어 성문 법전을 통해 규정되는 때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관련한 향토 정보를 망라한 지리지. 조선 전기 이래로 각 지역의 향토 정보를 수록한 지리지의 편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기재하고 있는 향토지 역시 다수 편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같은 조선 전기 관청에서 편찬한 지리지부터 『대동지지(大東地志)』와 같은 조선 후기 개인이 편찬한 지리지, 『도봉 구지』와 같은 현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