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누원리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계성(鷄聲)’이라는 지역 명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근처에 계성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계성과 부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아들은 전국을 수소문하여 유명한 의원을 모셔다가 치료하려 애썼지만,...
-
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누원리(樓院里)가 있던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은 조선 시대 한양(漢陽)과 함경도 방면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에 위치하였던 까닭에 한양의 관문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에 조선 초 전국적으로 여행객들을 위한 숙식 제공 시설인 원(院)을 설치할 때 도봉동 지역에는 덕해원(德海院)이 설치되었고, 이후 그 이름을 누원(樓院), 즉...
-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봉산은 북한산 국립 공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우이령(牛耳嶺)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북한산(北漢山), 즉 삼각산(三角山)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사패산(賜牌山)이 연이어 솟아 있다. 도봉산 명칭의 유래는 산 전체가 큰 바윗길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스승인 무학 대사(無學大師)가 조선 왕조 창업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도봉 1동과 도봉 2동을 관할하고 있다. 도봉산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도봉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천면에 속하였는데, 1912년 편찬된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 경기도편에 나오는 상누원리(上樓院里)·무수동(無愁洞)·영국리(寧國里) 지역에 해당한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개항기의 자연 마을.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은 한글로 ‘말미’이다. 옛날 산에다 말을 많이 놓아 먹였다고 해서 ‘말미’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시대 말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마산리였다.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면(海等村面)이 합쳐져 노해면(蘆海面)이 설치되면서 해등촌면의 창동리·유만리·마산리 등은 노해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상누원리(上樓院里)는 우리말로 ‘웃다락원’인데, 조선 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사람들이 묵던 원(院)[누원]의 위쪽에 다락[樓]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상누원리는 본래 누원리로 18세기 자료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누원리가 확인되고 있으나, 20세기의 지명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들에는 누원리 대신 상누원리(上樓院里)만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이와 문둥굴 사이에 있던 사잇말에서 음이 변하여 샘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샘말이 있던 방학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암회리·도당리·원당리를 각 일부를 합하여 방학리라 하였다. 1...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던 자연 마을.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소라리(所羅里)이었는데,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의 해등촌면과 노원면 지역을 합하여 노해면이 신설되면서 소라리는 인근의 계성리와 우이리·원당리 일부를 합하여 쌍문리가 되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쌍문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가 신설되면서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현재의 서울...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암회리(岩回里)는 도봉산 줄기가 동남방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바위를 돌아 들어가는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하였다. 또, 바위가 성과 같은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성고개라고도 불렸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 해등촌면과 노원면 지역을 합하여 노해면으로 고치고 암회리는 도당리와 원당리 일부, 방학굴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고려 시대부터 도봉산에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영국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영국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되고 도봉 서원이 지어졌으며, 도봉 서원이 마을의 안쪽에 있었다 하여 ‘서원안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리(元堂里)는 소원을 비는 신당이 있어 원당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당리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방학굴[방아골], 도당말과 합하여 방학리를 이루었다가, 1914년 노해면 방학리가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이 되었고,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유만리(流滿里) 앞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모든 곡식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들에 큰 늪이 있어서 물이 늘 가득하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만이’라고도 하였고, 일명 한내·한천이라고도 불렀다. 자연 마을로 형성된 유만리는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합...
-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 한양과 함경도 방면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함경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류의 유통 거점으로 기능했던 곳. 조선 시대 한양의 동북 방면 관문 지대에 위치했던 누원점(樓院店)은 조선 후기 상업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유통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특히 성저십리(城底十里) 외곽에 위치하여 금난전권(禁難廛權)의 적용을 받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