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권상하가 도봉산에 지은 윤봉구의 정자에 ‘소광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 내력을 서술한 기문. 「소광정기(昭曠亭記)」는 1713년(숙종 39) 이후에 조선 후기의 문신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도봉 서원 근처의 무우대(舞雩臺)와 영귀문(詠歸門), 그리고 송준길(宋浚吉)[1606~1672]과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바위...
1796년과 1797년, 김노겸이 두 차례에 걸쳐 도봉산과 수락산을 유람하고 쓴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는 상편(上篇)과 하편(下篇)으로 되어 있는데, 성암(性菴) 김노겸(金魯謙)[1781~1853]이 나이 16세가 되던 1796년(정조 20)과 그 이듬해인 1797년(정조 21)에 각각 독서(讀書)를 위하여 도봉 서원을 찾았다가 도봉산과 수락산을 유람한 내력을 기록한 글이다...
1800년 4월 신명현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나서 지은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는 1800년(순조 즉위) 4월에 신명현(申命顯)[1776~1820]이 도봉산(道峯山)을 유람하고 느낀 감흥을 적은 기문(記文)이다. 「유도봉기」는 신명현의 시문집 『평호유고(萍湖遺稿)』 권 하(下)에 수록되어 있다. 신명현의 자는 유목(幼穆)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
1819년 홍직필이 오희상과 함께 도봉산을 유람하고 나서 쓴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이 종암(鐘巖)에 있던 오희상(吳熙常)[1763~1833]의 별업(別業)을 여러 차례 찾아가 함께 도봉을 유람하자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마침내 홍직필의 나이 44세 되던 1819년(순조 19) 9월 10일에 오희상과 함께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