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성북구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창동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糧穀倉庫)가 있었다는 데에서 창동(倉洞)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99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간행한 『도봉 구지』에 창동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다. 창동 동명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
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소속의 서울북부지사. 근로복지공단은 「산업 재해 보상 보험법」에 의거한 산업 재해 보상 보험 사업과, 「고용 보험 및 산업 재해 보상 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보험 적용·징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1995년 5월 1일에 설립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의 전신인 근로 복지 공사는 1976년 12월 12일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한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7...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면장으로 활동했던 관료.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이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김우영(金宇榮)은 195...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한 지방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7월 4...
-
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
1914년부터 196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은 1914년 이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의 ‘노(蘆)’ 자와 해등촌면(海等村面)의 ‘해(海)’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까지 면(面)은 면적과 인구에서 편차가 컸는데, 근대적인 행정 지배를 위해 면제를 추진하고자 하였던 일제는 우선 면의 구역을 평균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기구. 면사무소는 일제 강점기 말단 지방 행정 기구인 면의 사무를 보던 장소이다. 한일 늑약 후 조선 총독부는 면의 지위를 확정했다. 지방에 따라 달리 불리던 것을 면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고, 종래 면장의 거주지에서 처리되던 사무를 면사무소를 설치하여 처리케 하였다. 면사무소에는 면장, 면서기, 회...
-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성북구 일대를 관할하던 행정 구역. 노해출장소(蘆海出張所)는 1914년에 신설되었던 경기도 양주군(楊洲郡) 노해면(蘆海面)이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됨에 따라 설치되었던 현재 도봉구 일대의 행정 구역 명칭이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 노원구 월계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이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1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도봉동이라는 동명은 서울특별시 근교의 명산인 도봉산 아래에 있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도봉산 아래의 다락원·서원 안말·무수울 등 마을을 합하여 도봉리가 되면서 ‘도봉’이라는 동리명이 시작되었다. 도봉구 도봉 제1동은 도봉동이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변천은 다음과 같다. 본래 도봉구의 도봉동은 경기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2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도봉동이라는 동명은 서울특별시 근교의 명산인 도봉산 아래에 있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도봉산 아래의 다락원·서원 안말·무수울 등 마을을 합하여 도봉리가 되면서 ‘도봉’이라는 동리명이 시작되었다. 도봉구 도봉 제2동은 도봉동이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변천은 다음과 같다. 본래 도봉구의 도봉동은 경기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공공 보건 의료 기관. 도봉구 보건소는 ‘평생 건강 책임지는 도봉, 건강 수명 연장으로 삶을 행복하게’를 비전으로 하고, ‘최상의 보건 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구민들의 평생 건강 보장, 선택과 집중을 통한 보건 의료 사업의 효율성 제고, 예방 중심의 종합적인 건강관리, 지역 사회와 연계하여 건강관리 능력 배양’을 목적으로 하여 구민의 건강을 관리하고...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과 노원구 월계동의 경계에 있던 자연 마을. 모랫마을은 창 1동과 월계동 경계 지역에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모랫마을은 창골·유만(流滿)·말미 등의 자연 마을과 합쳐 창동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창동에는 말미, 모랫마을, 유만리, 창골 등 여러 자연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위치한 한천[중랑천] 변 서쪽의 아래정잣들 위에 방죽이 있어 방줏굴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방줏굴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1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 방아 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골[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방학리(放鶴里)’로 쓴 것이라는 설, 둘째, 조선 시대에 도봉 서원(道峯書院)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를 내려다보니 학이 평화롭게 많이 앉아 놀므로 이곳을 방학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2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 방아 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골[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방학리(放鶴里)’로 쓴 것이라는 설, 둘째, 조선 시대에 도봉 서원(道峯書院)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를 내려다 보니 학이 평화롭게 많이 앉아 놀므로 이곳을 방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3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 방아 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골[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방학리(放鶴里)’로 쓴 것이라는 설, 둘째, 조선 시대에 도봉 서원(道峯書院)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를 내려다보니 학이 평화롭게 많이 앉아 놀므로 이곳을 방학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을 이룬 자연 마을 유만리 앞에 있던 들. 배라깃들은 수원(水源)이 적어 날씨가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유만·말미·모랫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형성된 창동리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이와 문둥굴 사이에 있던 사잇말에서 음이 변하여 샘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샘말이 있던 방학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암회리·도당리·원당리를 각 일부를 합하여 방학리라 하였다. 1...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소중한 꿈을 키우며 날마다 행복한 어린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실력을 쌓으며 꿈을 키우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나라를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착한 일에 앞장서자’이다. 1930년 4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에서 창동 보통학교로 개교하였...
-
1949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성북구, 노원구 일대를 관할하던 행정 구역. 성북구 숭인출장소(崇仁出張所)는 1914년에 신설되었던 경기도 고양군(高楊郡) 숭인면(崇仁面)이 1949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됨에 따라 설치되었던 현재의 성북구와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일대의 행정 구역 명칭이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동·번동·수유동·우이동, 성...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쇠죽골은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마을로 주막과 민가 약 20호가 있었다. 쇠죽골은 양주에서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 위해 올라온 소 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쑤어 먹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여물골이라고도 하였다. 쇠죽골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해등천·계성동 등 자연 마을과 합쳐져 뒤에 쌍문...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시대적 변동에 대한 내용. 선사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아직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봉 지역은 한강 유역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도봉 일대에서 선사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리(元堂里)는 소원을 비는 신당이 있어 원당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당리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방학굴[방아골], 도당말과 합하여 방학리를 이루었다가, 1914년 노해면 방학리가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이 되었고,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유만리(流滿里) 앞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모든 곡식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들에 큰 늪이 있어서 물이 늘 가득하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만이’라고도 하였고, 일명 한내·한천이라고도 불렀다. 자연 마을로 형성된 유만리는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합...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땅에서 형성되는 가시적·비가시적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함한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조선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조선시대 양주목 해등촌면은 그리 큰 행정 구역이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으로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강북구 등 도봉구 인근 지역은 일부 한성부(漢城府)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도봉구 지역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인 성저(城底) 약 3.93㎞[10리]와 이웃한 양주목 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들. 종자들은 마을 앞 늪에 물이 늘 가득하여 7년을 가물어도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들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종자들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1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 초안산 북쪽 야산 밑의 3개 마을[품먹골, 가운데 마을, 건넛마을]이 말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조선 시대부터 마산리[말뫼]라고 불리다가 모음이 변화하여 ‘말미’라고 굳어졌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창동 주공 아파트 3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창1동 전 지역이다. 이 ‘말뫼’, ‘말미’가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2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법률 제1172호와 서울특별시 조례 제274호에 의해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3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 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 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1970년 5월 5일에 창동에서 쌍문동이 분리 신설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4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창 2동은 창동이 창 1동과 창 2동으로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의 창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1970년 5월 5일에 창동에서 쌍문동이 분리 신설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5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창동이라는 동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창동리’라고 음각된 석조 이정표가 창동 초등학교 옆 공터에 옛날부터 세워져 있었으나 오랜 풍화 작용으로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서울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석조 이정표가 서울의 명소 600선 중 267번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과 창 3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창골은 조선 시대 마을에 창고가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이 있던 창 2동과 창 3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하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억새나 짚 따위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인 초당(草堂)이 위치하여 초당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초당말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고,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방학리로 하였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1945년 8·15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의 역사. 1963년 1월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 확장으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도봉, 쌍문, 월계, 공릉, 상계]이 서울특별시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현 도봉구의 시초가 되었다. 1970년대 서울특별시의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과밀화로 택지 및 도로 수요가 증대하고 환경이 악화되는 등 많은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골짜기. 황소바윗굴이라는 명칭은 황소 모양의 바위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황소바윗굴은 방학굴[방아골]에 있던 골짜기로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에 속하였고, 1914년 노해면 방학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황소바윗굴이 있던 방학굴에 대한 기록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