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
-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명이 견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898년(효공왕 2) 2월에 궁예(弓裔)가 휘하 장수인 왕건(王建)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이 지역...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포함한 한강 하류 유역은 고대 국가가 성립하기 전에는 목지국(目支國)을 우두머리로 하는 소국의 느슨한 연합체인 마한(馬韓)의 영역이었다. 도봉구에도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1. 백제 백제가 건국되면서 도봉 지역은 일찍부터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
-
고려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는 고려가 건국된 918년부터 조선이 건국되는 1392년 이전까지의 역사를 말한다. 고려시대에 서울특별시 도봉구 일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호칭은 숙종 대에 남경(南京)에 도읍을 설치하려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후보지 중에 ‘노원역(盧原驛)·해촌(海村)·용산(龍山)’이 거론되었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지도를 참조...
-
통일 신라 시대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경기도 양주시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각종 관직명과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漢化政策)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757년(경덕왕 16)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에 이르는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을 모...
-
고구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양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지리지2 한주(漢州) 내소군(來蘇郡)조에는 “내소군은 본래 고구려 매성현(買省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견주(見州)이다. 영현(領縣)은 2개로, 중성현(重城縣)은 본래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적성현(積城縣)이다. 파평현(波平縣)...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던 고려 후기의 후비(后妃). 명덕태후 홍씨(明德太后洪氏)는 고려 제27대 충숙왕(忠肅王)의 후비로서 제28대 충혜왕(忠惠王)과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을 낳았으며, 충혜왕이 즉위한 직후부터 충숙왕 때인 1336년까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해당하는 지역인 견주(見州)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할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중서사인(中書舍人...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대를 이어 집단으로 거주해 오고 있는 성씨.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대체로 양주(楊州)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봉구의 세거 성씨는 해등촌면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거에는 해등촌면에 거주하는 성씨들을 따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봉구만의 세거 성씨를 파악하기는 힘들며, 양주(楊洲) 지역의 성씨 정도를 참고할 수 있다. 그 외에 도봉...
-
고려 후기 도봉구 지역이 포함된 견주 출신의 문신. 견주(見州)는 경기도 양주군에 있던 고려 시대 행정 구역으로서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 속해 있었다. 송저(宋詝)는 고려 의종(毅宗) 대부터 명종(明宗) 대 무렵에 활동하였던 문신 관료였다. 다사다난하였던 그의 삶을 통해 무신 정권기 초기의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송저에 대한 자료는 주로 『고려사(高麗史)』와...
-
조선 전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 포함된 양주 지역에 살았던 효자. 신안선(申安善)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신안선이 양주부(楊州府)에 살고 있었으며, 훈도(訓導)를 지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신안선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보살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무덤에 합장하였으며, 이후로...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시대적 변동에 대한 내용. 선사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아직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봉 지역은 한강 유역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도봉 일대에서 선사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
지금의 도봉구 지역인 견주로 유배되었던 고려 후기의 왕족. 왕담(王聃)은 현종[재위 1009~1031]의 14세손으로, 문종과 함께 원혜 왕후(元惠王后) 김씨(金氏)의 소생인 평양공(平壤公) 왕기(王基)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순안군(順安君) 왕방(王昉)이다. 영복군(永福君) 왕격(王鬲)과는 형제이다. 왕담은 『고려사(高麗史)』에서만 소략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다. 당시 왕담...
-
고려 전기 도봉구 지역에 설치되었던 견주(見州)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견주(見州). 자는 자허(子虛). 묘지명에 의하면 이인실(李仁實)[1081~1153]은 고려 삼한 공신(三韓功臣) 이흠률(李歆律)의 6세손으로, 어머니는 신라왕의 후손인 대부인(大夫人) 김씨(金氏)이다. 특이한 점은 묘지명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은 채 “관직과 이름이 높았으나 50세가 되기 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땅에서 형성되는 가시적·비가시적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함한다...
-
고구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매성군의 별칭.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양광도조에 보면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창화군(昌化郡)이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내소군(來蘇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현종 9년에 본 주에 소속시켰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다”라고 되어 있다. 즉 창화군은 매성군의 다른 이름을 가리킨다. 다시 『삼국...
-
통일 신라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각종 관직명과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漢化政策)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757년(경덕왕 16)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에 이르는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쳤...
-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1308년(충선왕 즉위년)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관제 전반을 개정하면서 기존의 남경(南京)을 한양부(漢陽府)로 개편하였다. ‘한양’이란 명칭은 신라 시대의 ‘한양군(漢陽郡)’이라는 지역 명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양광도 남경 유수관 양주 항목에서 “충렬왕(忠烈王) 34년에 고쳐 한양부로 삼았다. 별호(別號)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