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
조선 후기 오억령이 도봉 서원의 사우를 두고 지은 상량문. 「「도봉사우상량문」(道峯祠宇上樑文)」은 조선 후기의 문신 만취(晚翠) 오억령(吳億齡)[1552~1618]이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위패를 모신 도봉 서원의 사우(祠宇)의 상량을 축복하는 글이다. 「도봉사우 상량문」은 오억령의 시문집 『만취집』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오억령의 자는 대년(大年), 호...
-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석이 도봉서원의 강당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상량문.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道峯書院講堂重建上樑文)」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상량식 할 때에 강당의 성대함과 유도(儒道)의 엄중함을 내용으로 지은 사륙변려문(四六騈麗文)으로 된 상량을 축복하는 글이다. 정확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에 병자호란에 관한 언급이...
-
조선 후기 선비 이재학과 서용보가 도봉산을 유람하며 시회를 가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화첩. 『도봉첩(道峯帖)』은 선비인 이재학(李在學)[1745~1806], 서용보(徐龍輔)[1757~1824] 등이 도봉산(道峰山)을 유람하며 시회를 가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화첩이다. 이재학은 관료로서 활약하다가 순조 즉위 후 곧 귀양을 가는 등 고초를 겪다가 1806년에 사망하였...
-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명이 견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898년(효공왕 2) 2월에 궁예(弓裔)가 휘하 장수인 왕건(王建)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이 지역...
-
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
『도봉첩』에 실린 「도봉도」를 그린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 김석신(金碩臣)[1758~?]의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군익(君翼), 호는 초원(蕉園). 아버지는 도화서 화원인 김응리(金應履)이며, 큰아버지 김응환(金應煥)[1742~1789]에게 입양되었다. 형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이다. 김석신은 진경 산수화가(眞景山水畵家)인 정선(鄭敾)의 영향을 받아 서울 근교의 실경...
-
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배향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庵)·청하자(靑霞子). 증조할아버지는 은산 군사(殷山郡事) 박소(朴蘇)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 박지흥(朴智興)이다. 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목사(牧使) 박상(朴祥)의 동생 박우(朴祐)이고, 어머니는 당악 김씨(棠岳金氏)이다. 박순(朴淳)[1523~1589]은 1...
-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도봉리와 창동리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일본은 한국을 강점한 후 군대와 헌병 경찰을 동원하여 항일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였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 사회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였다. 헌병 경찰은 정식 법 절차 없이 벌금, 구류 및 태형을 실시할 수 있는 즉결 처분권을 가지고 조선인들에게 전근대적인 태형을 실시하였다. 또...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1961년 제정된 「시장법」에서 시장이란 “가격 형성력이 작용하고, 거래되는 재화의 실제적 이동에 의해 소유권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어떤 범위”를 말하며,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나누고 있다. 상설 시장이란 일정 요건을 갖추고 하나의 건물 안에서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이나 기타 이를 지원하는 용역을 제공하는 영업장을 말하며, 정...
-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문화재를 수준 높은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수집해 문화유산을 수호하고 현재까지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인물이다. 도봉구 방학동에 전형필이 생활하였던 근대기 전통 가옥과 함께 묘소가 인근에 소재해 있다. 간송의 활동은 우리의 문화재가 도굴, 밀반출되었던 상황 속에서 해외 유출을 막고, 후...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은 조선인의 힘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해방 직후 조선인들 사이에서...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태조 이성계의 사위. 본관은 개성(開城). 개성 이씨의 시조는 고려 충숙왕 대의 이차감(李次瑊)으로, 청주 이씨로부터 분적하여 개성에 정착하였다. 이차감의 손자이자 이등의 아버지인 이덕시(李德時)[이개(李開)로 개명]는 고려조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고,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된 바 있다. 따라서...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의 부마 이등의 묘. 이등(李登)[1379~1457]은 본관(本貫)이 개성(開城)이고, 아버지는 이개(李開)이다. 태조의 딸인 의령 옹주(義寧翁主)와 혼인하여 태조의 부마 계천위(啓川尉)에 봉해졌다. 이등 묘의 서쪽 능선에는 근래에 건립한 ‘개성 이씨 선조 지단(開城李氏先祖之壇)’이 있다. 이등의 아버지 이개는 본명이 이덕시(李德時)로...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동각(東閣). 아버지는 사직서령(社稷署令)을 지낸 이탕(李宕)이며, 지중추부사 이정암(李廷馣)의 아우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이정형(李廷馨)[1549~1607]은 1568년(명종 23) 증광시 갑과 2위로 급제하였다...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제반 정세 변화 속에서 크게 동요하였다. 조선은 이 과정에서 야기된 임진왜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아직 각 세력 간의 갈등...
-
1950년 6월 27일 한국군과 북한군이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벌인 전투.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은 조선인의 힘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 되었다. 해방 직후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통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
피난길에서 도봉 지역을 거쳐 간 고려 전기의 왕. 현종(顯宗)[992~1031]은 고려의 8대 국왕으로, 이름은 왕순(王詢), 자는 안세(安世)이다. 간난신고 끝에 즉위하였으며, 지방 제도 정비 등 고려 왕조의 기틀을 잡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종은 특히 현재의 서울특별시 지역과 관련이 크며, 도봉구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현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인 안종(安宗)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