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방학동의 유래」는 학(鶴)과 관련되어 방학동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지명 유래담이자 풍수담이다. 방학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1914년 노해면 방학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으로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로 되었다. 1975년 도봉동에서 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창동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糧穀倉庫)가 있었다는 데에서 창동(倉洞)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99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간행한 『도봉 구지』에 창동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다. 창동 동명의 유래는 조선 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京畿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해 있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도봉구에 해당하였다. 본래 경기(京畿)는 왕도(王都)와 그를 둘러싼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京)’은 천자의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기(畿)’는 그를 둘러싼 지역을...
-
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과 노원구 월계동의 경계에 있던 자연 마을. 모랫마을은 창 1동과 월계동 경계 지역에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모랫마을은 창골·유만(流滿)·말미 등의 자연 마을과 합쳐 창동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창동에는 말미, 모랫마을, 유만리, 창골 등 여러 자연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위치한 한천[중랑천] 변 서쪽의 아래정잣들 위에 방죽이 있어 방줏굴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방줏굴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방학 1동, 방학 2동, 방학 3동을 관할하고 있다. 방학동(放鶴洞)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 시대 어느 임금이 도봉 서원 터를 정하려고 도봉산 중턱에 앉아 있다가 학이 노는 모습을 보고 ‘방학’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방학...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을 이룬 자연 마을 유만리 앞에 있던 들. 배라깃들은 수원(水源)이 적어 날씨가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유만·말미·모랫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형성된 창동리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못. 현재의 창동에는 조선 시대 자연 마을인 창골, 유만, 말미, 모랫마을 등이 있었다. 삼봉못은 이 가운데 유만리(流滿里) 근방에 있던 못이다. 유만리는 큰 늪이 있어 물이 가득하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삼봉못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 못에 비쳤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삼봉못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었으나, 정확한...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이와 문둥굴 사이에 있던 사잇말에서 음이 변하여 샘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샘말이 있던 방학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암회리·도당리·원당리를 각 일부를 합하여 방학리라 하였다. 1...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쇠죽골은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마을로 주막과 민가 약 20호가 있었다. 쇠죽골은 양주에서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 위해 올라온 소 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쑤어 먹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여물골이라고도 하였다. 쇠죽골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해등천·계성동 등 자연 마을과 합쳐져 뒤에 쌍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쌍문 1동, 쌍문 2동, 쌍문 3동, 쌍문 4동을 관할하고 있다. 쌍문동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자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고려 시대부터 도봉산에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영국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영국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되고 도봉 서원이 지어졌으며, 도봉 서원이 마을의 안쪽에 있었다 하여 ‘서원안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리(元堂里)는 소원을 비는 신당이 있어 원당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당리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방학굴[방아골], 도당말과 합하여 방학리를 이루었다가, 1914년 노해면 방학리가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이 되었고,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들. 종자들은 마을 앞 늪에 물이 늘 가득하여 7년을 가물어도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들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종자들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과 창 3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창골은 조선 시대 마을에 창고가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이 있던 창 2동과 창 3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하였...
-
1805년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이규(李珪)가 제기한 산송(山訟). 산송이란 조선 시대 묘지와 관련된 소송이다. 1805년 양주군 산송은 충청남도 공주에 사는 유학(幼學) 이규가 미아리와 해등촌면에 소재한 선조(先祖)의 묘역에 투장한 다른 묘들을 옮길 것을 요구하면서 국왕에게 상언(上言)을 올린 사건이다. 명당에 조상의 무덤을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억새나 짚 따위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인 초당(草堂)이 위치하여 초당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초당말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고,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방학리로 하였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골짜기. 황소바윗굴이라는 명칭은 황소 모양의 바위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황소바윗굴은 방학굴[방아골]에 있던 골짜기로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에 속하였고, 1914년 노해면 방학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황소바윗굴이 있던 방학굴에 대한 기록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