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
1579년 무렵 이이가 도봉서원이 건립된 경위에 대해 쓴 기문. 「도봉서원기(道峯書院記)」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도봉서원이 건립된 경위는 물론 서원(書院)의 규약과 건립 비용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기문(記文)이다. 「도봉서원기」는 이이의 시문집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3에 수록되어 있다. 이이의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석담(石...
-
조선 후기 도봉서원을 소재로 심사정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진경 산수화. 「도봉서원도(道峰書院圖)」는 도봉서원(道峯書院)을 제재로 그린 진경 산수화로, 화가는 확실치 않지만 선비 화가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작품으로 추측되고 있다. 도봉산(道峰山) 계곡에 위치한 도봉서원은 1573년에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서울의 관료는 물론이고...
-
1800년 4월 신명현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나서 지은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는 1800년(순조 즉위) 4월에 신명현(申命顯)[1776~1820]이 도봉산(道峯山)을 유람하고 느낀 감흥을 적은 기문(記文)이다. 「유도봉기」는 신명현의 시문집 『평호유고(萍湖遺稿)』 권 하(下)에 수록되어 있다. 신명현의 자는 유목(幼穆)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
-
1616년 중구일 무렵에 이항복이 도봉 서원에 갔다가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중구우유영국서원 무주무붕 행낭유건률건다 작률자다이위기 심시요락(重九偶遊寧國書院無酒無朋行囊唯乾栗建茶嚼栗煑茶以慰飢甚是寥落)[중구일에 우연히 영국 서원에서 노니는데, 술도 없고 친구도 없고 행낭 속에 오직 말린 밤과 건다(建茶)만이 있으므로, 밤을 씹어 먹고 차를 달여 마시어 주림을 달래노라니 매우 쓸쓸하였...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庵)·한수재(寒水齋). 고조할아버지는 활인서 별제를 지낸 권대성(權大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수도 찰방을 지낸 권주(權霔)이다. 할아버지는 선산 부사를 지낸 권성원(權聖源)인데,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사우(祠宇)[사당]에 모시자는 논의...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할아버지는 서인 산림계가 이념적 지주로 받들던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이다. 어머니는 목사 김래(金琜)의 딸이자 인목 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의 손녀이다. 형은 김수증(金壽增)과 김수흥(金壽興)이고, 아들은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512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간 서울·경기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 간 서울·경기 지역 선비들의 주요한 교유처가 되었으나, 고종 대에 서원 철폐...
-
도봉 서원 건립 후 율곡 이이로부터 「도봉 서원기」를 받아 온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용(景容), 호(號)는 석천(石泉). 증조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안자함(安子諴), 할아버지는 안순(安恂),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안방경(安方慶)이다. 안방경은 영흥 부사(永興府使) 등을 역임하고 명종(明宗)조에 문정 왕후(文定王后)의 숭불 정책(崇佛定策)을...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원장을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동직(李東稷)이다. 이수언(李秀彦)[1636~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1669년(현종 10)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
조선 전기 「도봉 서원기(道峰書院記)」를 지은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명화(申命和)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인은 성주 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이다. 이이(李珥)[1536~15...
-
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고 도봉산을 유람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보만당(保晩堂)·치암(癡庵)·추애(秋崖)·습정(習靜).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계(李啓)이고, 어머니는 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의 딸인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이정구(李廷龜)[1564~1635]는 19세가 되던 1582년(선조 15) 정엽(鄭曄)과 함께 도봉 서원...
-
조선 후기 도봉산과 도봉 서원을 소재로 시로 읊은 문신이자 유학자. 이항복은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오성 대감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절친한 사이였던 이덕형(李德馨)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필운(弼雲)·백사(白沙)·동강(東崗)·청화진인(淸化眞人). 아버지는 참찬 이몽량(李夢亮)으로 중종...
-
조선 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재(欽哉), 호는 유곡(柳谷). 정종의 여섯째 아들 진남군(鎭南君) 이종생(李終生)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수창군(壽昌君) 이칭(李秤)이며, 어머니는 남인(南獜)의 딸이다. 정초(鄭礎)의 딸 온양 정씨(溫陽鄭氏) 및 영의정을 지낸 최흥원(崔興源)의 딸 삭녕 최씨(朔寧崔...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제반 정세 변화 속에서 크게 동요하였다. 조선은 이 과정에서 야기된 임진왜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아직 각 세력 간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