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협
-
1682년 봄 김창협이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였던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다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가을에 딱섬[楮島]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배에 오르니 배 안에 늙은 선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홍천(洪川) 진사 남궁원(南宮垣)이었다. 일찍이 임술년[1682] 가을에 도봉 서원(道峯書院)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그해에 나는 문과에 급제...
-
1708년 김창업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지은 오언 배율의 한시. 「도봉기유(道峯紀遊)」는 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의 문신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도봉산을 노닌 것에 대하여 지은 기행 한시이다. 김창업의 자는 대유(大有), 호는 가재(稼齋) 또는 노가재,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병자호란 때 주전파였던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손자이...
-
1697년 봄 농암 김창협이 도봉 서원을 방문하는 길에 도봉산의 풍광을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농암집(農巖集)』 「연보」에 따르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은 47세가 되던 해인 1697년(숙종 23)에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와 부제학을 사직하고 한강의 미음(渼陰)으로 돌아와, 그해 윤3월에는 여러 문생들과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다녀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창협은...
-
1673년 우암 송시열의 「제도봉서원」을 차운하여 농암 김창협이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도봉서원(道峯書院)은 1573년(선조 6년)에 조광조(趙光祖)를 기리기 위해서, 조광조가 자주 찾았던 도봉산 자락의 영국사(寧國寺) 터에 설립한 서원으로, 설립과 동시에 사액(賜額)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경우 도봉 서원에 머물며 강학을 한 인연으로 1696년(숙종 22)에 병향...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庵)·한수재(寒水齋). 고조할아버지는 활인서 별제를 지낸 권대성(權大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수도 찰방을 지낸 권주(權霔)이다. 할아버지는 선산 부사를 지낸 권성원(權聖源)인데,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사우(祠宇)[사당]에 모시자는 논의...
-
조선 후기 송시열의 도봉 서원 배향에 반대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관(士寬). 할아버지는 김시성(金是城)이고, 아버지는 전 행병조좌랑(前行兵曹佐郞)을 지낸 통덕랑(通德郞) 김우화(金遇華)이다. 김우화[1656~1727]의 자는 이현(而顯)으로 1695년 황감 별제(黃柑別製)에서 장원을 하여 주택을 하사받았으며 그해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봉상시정(奉常寺正)에까지 올...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할아버지는 서인 산림계가 이념적 지주로 받들던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이다. 어머니는 목사 김래(金琜)의 딸이자 인목 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의 손녀이다. 형은 김수증(金壽增)과 김수흥(金壽興)이고, 아들은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시를 남긴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증조할아버지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고, 할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며, 아버지는 김수항(金壽恒)이다.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그 형제들인 김창집(金昌集),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창집(金昌緝), 김창립(金昌立)은 ‘6창(六昌)’이라 불리며 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512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간 서울·경기 지...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였던 학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언휘(彦暉),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진사 민만(閔晩)이고, 어머니는 압해 정씨(押海丁氏)이다. 부인은 충의위(忠義衛) 이제(李濟)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로, 슬하에 민윤창(閔允昌)·민경창(閔景昌)·민회창(閔會昌) 등 3남 1녀를 두었다. 민이승(閔以升)[1653~1697]은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지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 간 서울·경기 지역 선비들의 주요한 교유처가 되었으나, 고종 대에 서원 철폐...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증조할아버지는 어한명(魚漢明)이고,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진익(魚震翼)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경종의 장인인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구(魚有龜)가 형이다.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공자 사상 관련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 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원장을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동직(李東稷)이다. 이수언(李秀彦)[1636~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1669년(현종 10)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 머물기를 추구했다. 더욱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자신이 생각한 도학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벼슬을 그만두고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연 안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자연 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이 담고 있는 도학적 진리를 되새기며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