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하
-
1779년 이엽이 북한산과 도봉산을 유람하고 그 여정을 적은 기문. 「북한도봉산유기(北漢道峯山遊記)」는 1779년(정조 3) 4월 15일 농은(農隱) 이엽(李燁)[1729~1788]이 사간(司諫) 기언정(奇彦鼎)[1716~?], 정언(正言) 유광천(柳匡天)[1732~?]과 함께 3일 간의 일정으로 북한산과 도봉산을 돌아보고 나서 쓴 유기문(遊記文)이다. 「북한도봉산유기」는 이엽의...
-
조선 후기의 문신 권상하가 도봉산에 지은 윤봉구의 정자에 ‘소광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 내력을 서술한 기문. 「소광정기(昭曠亭記)」는 1713년(숙종 39) 이후에 조선 후기의 문신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도봉 서원 근처의 무우대(舞雩臺)와 영귀문(詠歸門), 그리고 송준길(宋浚吉)[1606~1672]과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바위...
-
1800년 4월 신명현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나서 지은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는 1800년(순조 즉위) 4월에 신명현(申命顯)[1776~1820]이 도봉산(道峯山)을 유람하고 느낀 감흥을 적은 기문(記文)이다. 「유도봉기」는 신명현의 시문집 『평호유고(萍湖遺稿)』 권 하(下)에 수록되어 있다. 신명현의 자는 유목(幼穆)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
-
1669년 권상하가 이광하와 함께 도봉산을 노닐 때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중춘에 이계이 광하와 함께 도봉산에서 놀다」는 1669년(현종 10)에 조선 후기의 문신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계이(啓以) 이광하(李光夏)[1643~1701]와 함께 도봉산(道峯山)을 유람할 때에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원제(原題) 옆에 ‘기유(己酉)’라는 간지(干支)가...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庵)·한수재(寒水齋). 고조할아버지는 활인서 별제를 지낸 권대성(權大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수도 찰방을 지낸 권주(權霔)이다. 할아버지는 선산 부사를 지낸 권성원(權聖源)인데,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사우(祠宇)[사당]에 모시자는 논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상징하는 자연 경관과 문화유적 가운데 2007년 관광 자원으로 선정된 10대 명소. 도봉구에서 도봉을 널리 알리고 구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관광객 유치에 활용하기 위해 2007년 5월 11일 10대 관광 명소를 선정하였다. 도봉산, 서울 연산군 묘 및 방학동 은행나무, 도봉 서원, 천축사, 발바닥 공원, 방학 사계 광장, 서울 열린 극장 창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서원마을에서 개최되었던 축제. 서원마을은 도봉 서원의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서 이름도 도봉 서원에서 유래하였다. 도봉동 일대의 안골, 서원내, 서원말을 하나로 묶은 권역을 의미한다. 서원마을은 과거에 도당굿과 안골 거릿대감제를 지냈으며, 인근에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 등 유림들의 암각문과 신정 왕후(神貞王后) 별장터 등이 남아 있다. 2002년 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도봉산의 동사면을 흐르는 물줄기에 의해 형성된 계곡. 도봉계곡은 도봉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문사동 계곡과 용어천 계곡이 합류하는 천진사와 성도원에서 시작하여 도봉산 공영 주차장 부근까지 이어진다. 도봉산에 있는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도봉계곡은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동천(洞天)’이라 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학문을 수행하는 학자나 시인들이 많이 모여...
-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봉산은 북한산 국립 공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우이령(牛耳嶺)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북한산(北漢山), 즉 삼각산(三角山)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사패산(賜牌山)이 연이어 솟아 있다. 도봉산 명칭의 유래는 산 전체가 큰 바윗길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스승인 무학 대사(無學大師)가 조선 왕조 창업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512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간 서울·경기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의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도봉 계곡에 산재되어 있는 바위 글씨군. 도봉 계곡에 산재하는 마애 각석군은 분포 위치상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대략 3개 군으로 나뉜다. 1군은 도봉 계곡 초입, 2군은 도봉서원 앞, 3군은 도봉서원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1군과 2군 중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 서원 앞 계곡에 있는, 조선 시대 권상하와 송시열의 글씨를 새긴 바위 글씨. 무우대 제월광풍갱별전(舞雩臺 霽月光風更別傳) 바위 글씨에서 ‘무우대 한수옹(舞雩臺寒水翁)’은 권상하(權尙夏)[1641~1721], ‘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 화양노부서(霽月光風更別傳 聊蔣絃誦答潺湲 華陽老夫書)’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글씨를 각각 새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 간 서울·경기 지역 선비들의 주요한 교유처가 되었으나, 고종 대에 서원 철폐...
-
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인물.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달경(達卿), 호는 추담(秋潭), 환성당(喚醒堂). 창녕 성씨(昌寧成氏) 17세손이다. 아버지는 성호영(成虎英), 어머니는 덕수 이씨(德水李氏)로 5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이다.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성만징(成晩徵)은 1659년(효종 10) 11월 7일 상주(尙州) 흥암리(興...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제향된 노론 산림의 영수.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증조할아버지는 봉사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이며,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다.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를 지낸 송갑조(宋甲祚)이고, 어머니는 선산 곽씨(善山郭氏), 부인은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할아버지는 송응서(宋應瑞)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은휘(金殷輝)이며, 장인은 정경세(鄭經世)이다. 민유중(閔維重)이 사위이다. 송준길(宋浚吉)[1606~1672]은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
-
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字)는 계빈(季賓)으로 청송 심씨(靑松沈氏) 16세손이다. 이조판서로 추증된 심수견(沈壽堅)과 부평 이씨(富平李氏)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부인 해주 최씨(海州崔氏)와 혼인하여 1남을 두었고 둘째 부인인 우봉 이씨(牛峰李氏)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심정관(沈廷觀)의 오종손(五從孫)인 심정...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증조할아버지는 어한명(魚漢明)이고,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진익(魚震翼)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경종의 장인인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구(魚有龜)가 형이다.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
서원마을은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현재의 도봉구 도봉동 일대의 안골, 서원내, 서원말을 하나로 묶은 권역을 의미한다. 2002년 문화 관광부와 전국 문화원 연합회에서 추진한 ‘문화·역사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도봉산 서원마을이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하였을 만큼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도봉산 서원마을은 조선 시대 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바위 글씨. ‘염락정파 수사진원(洛正派洙泗眞源)’은 도봉 서원 앞 도봉산 계곡에 새겨진 바위 글씨이다. ‘염락(濂洛)’은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은 주돈이(周敦頤)와 그의 제자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가 각기 강학하던 곳이다. 또한 ‘수사(洙泗)’는 공자가 강학하였던 곳을 일컫는 말이다. 즉 ‘...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공자 사상 관련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 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중건에 기여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庵). 할아버지는 호조참판 윤비경(尹飛卿)으로, 이구연(李九淵)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와 혼인하여 윤명우(尹明遇)·윤명헌(尹明獻)·윤명운(尹明運)·윤명원(尹明遠)을 낳았다. 아버지 윤명운은 이경창(李慶昌)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를 계실(繼室)로 맞이하여 윤봉구(尹...
-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陶庵)·한천(寒泉).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이숙(李䎘)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만창(李晩昌)이며, 어머니는 민유중(閔維重)의 딸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송준길(宋浚吉)의 외손이다. 이재(李縡)[1680~1746]는 23세가 되던 1702년(숙종 28)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
-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 머물기를 추구했다. 더욱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자신이 생각한 도학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벼슬을 그만두고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연 안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자연 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이 담고 있는 도학적 진리를 되새기며 진리를...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배향된 송시열의 제자이자 도봉 서원 청금록에서 윤증의 이름을 삭제한 노론계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보(愼甫). 할아버지는 한유량(韓有良)으로 자는 상오(相五)이다. 한성 판관을 지냈으며 정산(定山)에 부임하였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웃 고을에 격문을 보내고 결사(決死)하여 고을을 지켰다. 효종 대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에 추증되고 다...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에 제수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증조할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홍처후(洪處厚)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을 지낸 홍수하(洪受河)이며, 양부는 증이조참판 홍우석(洪禹錫), 생부는 홍우규(洪禹圭)이다. 어머니는 박세구(朴世耉)의 딸이다. 홍계적(洪啓迪)은 문과에 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