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집
-
1682년 봄 김창협이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였던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다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가을에 딱섬[楮島]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배에 오르니 배 안에 늙은 선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홍천(洪川) 진사 남궁원(南宮垣)이었다. 일찍이 임술년[1682] 가을에 도봉 서원(道峯書院)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그해에 나는 문과에 급제...
-
1697년 봄 농암 김창협이 도봉 서원을 방문하는 길에 도봉산의 풍광을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농암집(農巖集)』 「연보」에 따르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은 47세가 되던 해인 1697년(숙종 23)에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와 부제학을 사직하고 한강의 미음(渼陰)으로 돌아와, 그해 윤3월에는 여러 문생들과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다녀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창협은...
-
1673년 우암 송시열의 「제도봉서원」을 차운하여 농암 김창협이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도봉서원(道峯書院)은 1573년(선조 6년)에 조광조(趙光祖)를 기리기 위해서, 조광조가 자주 찾았던 도봉산 자락의 영국사(寧國寺) 터에 설립한 서원으로, 설립과 동시에 사액(賜額)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경우 도봉 서원에 머물며 강학을 한 인연으로 1696년(숙종 22)에 병향...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시를 남긴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증조할아버지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고, 할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며, 아버지는 김수항(金壽恒)이다.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그 형제들인 김창집(金昌集),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창집(金昌緝), 김창립(金昌立)은 ‘6창(六昌)’이라 불리며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