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
-
일제 강점기 오치 다다시치가 저술한 1914년 도봉 지역을 포함한 군면동리(郡面洞里)의 통폐합 이전과 이후의 지명을 대조한 책. 오치 다다시치[越智唯七]는 일본 간사이 대학[關西大學] 출신이라는 점만 밝혀졌을 뿐, 신분 및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서문에서 여러 관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고, 조선 총독부 직원록이나 관보 등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계성(鷄聲)’이라는 지역 명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근처에 계성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계성과 부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아들은 전국을 수소문하여 유명한 의원을 모셔다가 치료하려 애썼지만,...
-
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
1914년부터 196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은 1914년 이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의 ‘노(蘆)’ 자와 해등촌면(海等村面)의 ‘해(海)’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까지 면(面)은 면적과 인구에서 편차가 컸는데, 근대적인 행정 지배를 위해 면제를 추진하고자 하였던 일제는 우선 면의 구역을 평균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누원리(樓院里)가 있던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은 조선 시대 한양(漢陽)과 함경도 방면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에 위치하였던 까닭에 한양의 관문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에 조선 초 전국적으로 여행객들을 위한 숙식 제공 시설인 원(院)을 설치할 때 도봉동 지역에는 덕해원(德海院)이 설치되었고, 이후 그 이름을 누원(樓院), 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개항기의 자연 마을.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은 한글로 ‘말미’이다. 옛날 산에다 말을 많이 놓아 먹였다고 해서 ‘말미’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시대 말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마산리였다.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면(海等村面)이 합쳐져 노해면(蘆海面)이 설치되면서 해등촌면의 창동리·유만리·마산리 등은 노해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과 노원구 월계동의 경계에 있던 자연 마을. 모랫마을은 창 1동과 월계동 경계 지역에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모랫마을은 창골·유만(流滿)·말미 등의 자연 마을과 합쳐 창동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을 이룬 자연 마을 유만리 앞에 있던 들. 배라깃들은 수원(水源)이 적어 날씨가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유만·말미·모랫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형성된 창동리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상누원리(上樓院里)는 우리말로 ‘웃다락원’인데, 조선 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사람들이 묵던 원(院)[누원]의 위쪽에 다락[樓]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상누원리는 본래 누원리로 18세기 자료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누원리가 확인되고 있으나, 20세기의 지명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들에는 누원리 대신 상누원리(上樓院里)만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이와 문둥굴 사이에 있던 사잇말에서 음이 변하여 샘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샘말이 있던 방학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암회리·도당리·원당리를 각 일부를 합하여 방학리라 하였다. 1...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던 자연 마을.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소라리(所羅里)이었는데,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의 해등촌면과 노원면 지역을 합하여 노해면이 신설되면서 소라리는 인근의 계성리와 우이리·원당리 일부를 합하여 쌍문리가 되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쌍문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가 신설되면서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현재의 서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쇠죽골은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마을로 주막과 민가 약 20호가 있었다. 쇠죽골은 양주에서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 위해 올라온 소 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쑤어 먹였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여물골이라고도 하였다. 쇠죽골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해등천·계성동 등 자연 마을과 합쳐져 뒤에 쌍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암회리(岩回里)는 도봉산 줄기가 동남방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바위를 돌아 들어가는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하였다. 또, 바위가 성과 같은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성고개라고도 불렸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 해등촌면과 노원면 지역을 합하여 노해면으로 고치고 암회리는 도당리와 원당리 일부, 방학굴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고려 시대부터 도봉산에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영국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영국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되고 도봉 서원이 지어졌으며, 도봉 서원이 마을의 안쪽에 있었다 하여 ‘서원안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당리(元堂里)는 소원을 비는 신당이 있어 원당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당리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방학굴[방아골], 도당말과 합하여 방학리를 이루었다가, 1914년 노해면 방학리가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이 되었고,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유만리(流滿里) 앞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모든 곡식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들에 큰 늪이 있어서 물이 늘 가득하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만이’라고도 하였고, 일명 한내·한천이라고도 불렀다. 자연 마을로 형성된 유만리는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합...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들. 종자들은 마을 앞 늪에 물이 늘 가득하여 7년을 가물어도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들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종자들이 있던 창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과 창 3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창골은 조선 시대 마을에 창고가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이 있던 창 2동과 창 3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하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골짜기. 황소바윗굴이라는 명칭은 황소 모양의 바위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황소바윗굴은 방학굴[방아골]에 있던 골짜기로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에 속하였고, 1914년 노해면 방학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황소바윗굴이 있던 방학굴에 대한 기록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