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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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經書八圖序 |
영어공식명칭 | Gyeongseo Paldose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86년 - 「경서팔도서」최상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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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49년 - 「경서팔도서」최상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96년 - 「경서팔도서」간행 |
배경 지역 | 「경서팔도서」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성격 | 서발류|서문 |
작가 | 최상룡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활동한 최상룡이 그린 여덟 종의 경서를 도식화한 그림에 부치는 서문.
[개설]
최상룡[1786~1849]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자는 덕용(德容), 호는 봉촌(鳳村)이다. 최상룡은 달성(達城)의 강동(江洞)[현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출생했다. 최상룡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했다. 세상이 어지러워 분경(奔競)[엽관운동]이 심해짐을 보고 향리로 돌아와 독암서당(讀巖書堂)을 지어 후진을 가르치니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문전을 메웠다. 당시 대학자인 홍직필(洪直弼)·유치명(柳致明)·김익동(金翊東) 등과 경전과 예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경전(經典)의 주요 내용을 도시(圖示)[그림이나 도표 따위로 그려 보임]하여 맥락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성리학과 훈고학을 깊이 연구해 「사서변의(四書辨疑)」·「재이록(在邇錄)」·「소학췌의(小學贅疑)」·「계몽차의(啓蒙箚疑)」·「정주서변의(程朱書辨疑)」 등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저서로는 『봉촌문집(鳳村文集)』 22권이 있다.
[구성]
「경서팔도서」는 최상룡의 경학관(經學觀)과 최상룡이 주장한 사서사경론(四書四經論)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내용]
최상룡의 사서사경론은 사서(四書)가 사경(四經)에서 연원하였다는 경학관이다. 사서사경론의 관점에서는 사경과 사서를 서로 연관시켜 『중용』은 『주역』에 근원하고, 『대학』은 『서경』에 근원하고, 『논어』는 『예기』에 근원하고, 『맹자』는 『시경』에 근원한 점을 밝힘으로써 사경과 사서를 경(經)과 전(傳)으로 묶어 각각 8종이 아닌 4종의 경서(經書)로 규정하였다. 4종의 경서는 공부 측면에서 대지(大旨)에 나아가 귀추를 살펴보면 경(敬) 한 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서사경론은 4종 경서가 하나로 관통되는 도가 있다는 인식이다.
최상룡의 경학공부론(經書工夫論)은 사서를 먼저 읽고 사경을 뒤에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서는 주자의 독서법을 따르지 않고 『중용』 → 『대학』 → 『논어』 → 『맹자』의 순으로, 사경은 『시경』 → 『서경』 → 『예기』 → 『주역』의 순으로 읽어야 한다. 이러한 사서사경론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바탕으로 경서팔도(經書八圖)를 그려 8종 경서를 각각 하나의 도표로 도식화하였다.
[특징]
「경서팔도서」는 사서사경 각각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하나의 도로 잘 통합하여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서팔도서」는 육경과 사서를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독자적인 경서공부법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