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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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現代 都市 祝祭, 大邱-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현묵 |
[정의]
대구광역시의 축제와 대구컬러풀페스티벌 소개.
[현대 도시 축제]
과거 축제는 대부분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공통의 관심사, 즉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축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점차 도시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의 약화, 공통된 경제적 기반 붕괴 등으로 인한 축제의식이 약화되었다. 그런 까닭에 현대 도시에서 전개되는 축제는 과거의 그러한 특성들 대신, 도시민들의 놀이문화로서의 유희적 특성들이 더욱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경제적, 사회문화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매우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기획된 이벤트로 만들어지고 있다.
즉, 현대 도시 축제는 축제가 가지고 있는 바, 제의성보다는 유희성이 더 강조되고 있고, 제의성도 도시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이 아닌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 그리고 경제 유발 효과 등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동시에 자신이 속한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제고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지자체 단체장의 대민 접촉 기회로 활용되기도 한다.
[달구벌 축제]
달구벌축제는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을 계기로 1982년부터 두류공원을 중심으로 대구 전역에서 다양하게 개최되었던 축제다. 그러다 주요 축제 종목이었던 소싸움이 ‘대구’라는 도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동시에 불거진 예산 낭비 논란 등으로 2002년 축제가 중단되었다. 물론 당시 대구는 2002년 월드컵 문화행사,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문화축전 등 대규모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달구벌축제가 추가로 진행되기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 ‘대구대표축제 개발 연구’ 용역을 거쳐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 결정되어, 2005년 제1회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달구벌축제는 해마다 그 내용이 바뀌어 진행되었다. 1996년 동대구로 와 신천 고수부지에서 ‘용두방천 큰 줄 당기기’와 지신밟기, 길놀이 등 전통행사를 중심으로 개최되기도 하였으나 점차 두류공원을 중심으로 한 시민대상 오락 프로그램과 대구문화예술회관과 시민회관을 중심으로 대구시 산하 예술단체들의 예술행사가 주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 당시 달구벌축제 예술행사는 대구시 예총지회 산하 각 단체들에게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예술단체에 대한 공공성 지원사업이 부재한 가운데 대구시로부터 지원받는 사업 중 가장 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극, 무용, 음악 등 연합공연 외 서예작품 전시, 시조경창대회 등 문화예술행사들이 펼쳐졌다.
이 외에도 알뜰장터, 향토특산품 코너, 창업정보전 등 상설행사도 열렸다. 초반에는 관 주도로 개최되었으나 1996년 민선시장 출범 이후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예총 대구지회가 공동으로 추진하였으며, 예산은 5억 내외였다.
그러다 1998년부터 두류공원 야구장에 임시 투우장을 설치하고 전국투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상금을 걸고 개최한 투우대회였기에 전국에서 우수한 싸움소들이 참가하여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축제가 계속될수록 달구벌축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으며, 특히 21세기로 들어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싸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하여 대구시는 종합형 축제가 아닌 테마형 축제를 개발하기 위하여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대구 대표축제 개발 연구’를 진행하여 당시 도시 브랜드인 ‘컬러풀 대구’를 내세운 도심형 거리 퍼레이드를 중심으로 한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을 확정하였다. 당초 격년제 축제감독, 도심형 패션축제 등이 주요 내용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격년제 축제감독제는 수용되지 못하였고, 도시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 2005년에 제1회로 개최되었다.
[대구 컬러풀 페스티벌]
2005년 제1회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은 도심형 축제로 개최되었으며, 대구시 최초로 중앙대로의 교통을 전면 차단하고 1박2일간 대규모 패션퍼레이드를 포함한 대형 공연행사 및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최초의 축제감독제를 도입하여 축제의 전문성을 올리고자 하였다. 이때 반월당에서 대구역까지 중앙로에 녹색 인조 잔디를 깔고, 하늘에 오색 차양을 쳐 ‘컬러풀’의 색감을 최대한 드러내려고 한 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메인 행사로 개최되었던 컬러풀패션퍼레이드는 2010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였던 컬러풀퍼레이드의 원형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2회 축제부터는 이와 같은 콘셉트가 연결되지 못하고 대구 중심을 가로지르는 신천의 고수부지로 축제장소가 변경되어 주된 축제 컨셉이 ‘빛’을 중심으로 한 루미나리에 축제로 전개되었고, 또 다시 콘셉트가 바뀌어 ‘생활예술’을 중심으로 시민예술축제로 진행되었다.
이후 2010년 다시 축제 장소가 도심으로 변경되어 중앙로에서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과 2011년은 대구에서 개최되는 2011대구세계육상대회의 개최 시기인 8월에 개최되었으며, 2012년부터 2014년은 원래 축제 기간인 10월에 개최되다가, 2015년부터 5월 첫 번째 토요일, 일요일로 고정하여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거리퍼레이드가 확대되어 중앙로에서 국채보상로 일대로 바뀌어 진행되었다.
축제의 주요 내용은 국내외 퍼포머들과 일반인이 참여하는 컬러풀퍼레이드를 킬러 콘텐츠로 정하여, 매년 그 참여 규모와 내용을 발전시켰다. 그 외 거리예술제, 스페셜 프로그램, 컬러풀예술장터 등이 대구 도심 일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축제의 진행은 2010년부터 대구문화재단이 위탁을 받아 축제감독을 선임하여 진행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별도의 축제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축제감독을 선임하였고, 축제감독을 중심으로 한 실행팀의 책임 아래 진행되었다.
관람하는 시민을 포함하여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의 규모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10년 약 30만 명에서 2019년에는 100만 명이 넘어섰다[대구문화재단 발표]. 그러나 참여 시민들이 증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100만 명이라는 수치는 다소 과장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또한 2019년부터 그동안 사용되던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을 ‘대구컬러풀페스티벌’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대구컬러풀페스티벌로 바뀌면서 ‘컬러풀대구’라는 도시 브랜드를 확산시키고자 실시한 축제의 의미가 대구에서 개최되는 컬러풀축제가 된 셈이다. ‘컬러풀’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교통의 문제, 인근 상인들의 불만, 일부 행사 구성의 혼란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2010년에는 1,0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 설문조사에서 만족도가 79%로 나오기도 하였다.
[현대 도시 축제로서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의 개선 방안]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의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첫째,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 대규모 도심에서 개최된다는 점, 둘째,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대구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어야 한다는 점, 셋째, 교통 통제로 인한 인근 상인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 등이다.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은 문화관광체육부가 평가하고 대표, 최우수, 우수 등의 등급을 붙이는 문화관광축제와 전적으로 다르다. 그렇기에 그 기준에 맞출 필요도 없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없다. 오히려 대구만의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컬러풀’이라는 개념을 적극 해석하여야 한다. 당초 ‘컬러풀’의 개념을 지나치게 패션 혹은 컬러풀한 색감 등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본다. 오히려 ‘컬러풀’을 대구 사회가 지향해야 할 21세기적 문화사회, 다양성의 사회, 다름과 차이를 품는 사회 등의 가치로 확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대구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다.
결국 현대 도시 축제로서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축제의 프로그램이나 운영 등 기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대구가 추구해야 할 미래도시로서 가치를 담아내는 철학과 비전 등 거시적 전략과 더불어 시민과 인극 상인들이 동시에 화합하는 미시적 대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