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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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佳川洞 古墳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118|가천동 119|가천동 129|가천동 130|가천동 산4-5|가천동 산18|가천동 산14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민선례 |
조성 시기/일시 | 삼국시대 - 대구 가천동 고분군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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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1월 16일~1999년 7월 31일 - 대구 가천동 고분군 대구선 철도 이설 구간[동대구~청천] 대구 가천동 고분군②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7월 29일~9월 12일 - 대구 가천동 고분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11월 15일~12월 1일 - 대구 가천동 고분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3월 30일~10월 8일 - 대구 가천동 고분군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대구 구간[제1공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5월 25일~9월 3일 - 대구 가천동 고분군 경부고속철도 대구 도심 통과 구간 Ⅴ구역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소재지 | 대구 가천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118|119|129|130|산4-5|산18|산146![]() |
성격 | 고분군 |
양식 | 널무덤[목관묘]|덧널무덤[목곽묘]|돌덧널무덤[석곽묘]|돌방무덤[석실묘]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가천동 고분군(大邱佳川洞古墳群)은 고모령을 넘어 대구광역시로 들어서면 나오는 수성구 가천동 마을의 북쪽 능선 일대의 해발 76m 정도의 낮은 구릉에 넓게 분포한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은 고산~무열로 간 국도와 중앙고속도로 사이에 있으며, 고분군의 북쪽에는 금호강이 인접하여 있다.
대구선 철도 이설 구간[동대구~청천]에 해당하는 구역인 대구 가천동 고분군②[수성구 가천동 18, 118, 119, 129, 130번지 일대]를 1998년 11월 16일부터 1999년 7월 3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 204기, 돌방무덤[석실묘] 7기와 통일신라 이후의 수혈, 주혈, 노지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이후 철도 이설 공사의 추가 설계 변경에 의하여 1998~1999년에 발굴 조사된 대구 가천동 고분군 인접 구역[가천동 산146번지 일대]에 대한 조사를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다. 1999년 7월 29일부터 1999년 9월 12일까지, 1999년 11월 15일부터 1999년 12월 1일까지 2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40기가 확인되었다.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대구 구간[제1공구] 중 대구 가천동 유적[가천동 18번지 일대]은 2002년 3월 30일부터 2002년 10월 8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동, 원삼국시대 널무덤[목관묘] 4기,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 24기, 돌덧널무덤 35기, 고려시대 건물지, 조선시대 및 시대불명의 분묘, 기타 생활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2009년 5월 25일부터 9년 9월 3일까지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경부고속철도 대구 도심 통과 구간 Ⅴ구역에 해당하는 대구 가천동 신라묘군[가천동 산4-5번지 일원, 대구 가천동 고분군①에 포함]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였다. 원삼국시대 널무덤 1기,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54기, 돌방무덤 3기, 삼국~통일신라시대 수혈 4기, 구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고,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수혈, 구상유구, 소토유구, 주혈군, 그 외 시대미상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에서는 원삼국시대 널무덤을 비롯한 삼국시대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널무덤의 잔존 깊이가 낮은 편이며, 유물은 충전토, 목관 내부, 목관 외부, 요갱 등에 부장되었다. 나무덧널무덤[목곽묘]은 대부분 소형의 단곽식이며, 유물은 양 단벽에 부장되었다. 돌덧널무덤은 대부분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이며, 단곽식과 주부곽식이 확인된다. 주·부곽식 돌덧널무덤은 별도의 묘광을 굴착하여 부장곽을 설치한 것, 하나의 묘광에 주곽과 부곽을 설치한 것, 하나의 묘광에 판석을 이용하여 격벽을 설치하여 주곽과 부곽을 구분한 것이 확인된다. 이 중 격벽(隔璧)을 설치한 주곽식과 부곽식 석곽묘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데 가천동 석곽묘의 특징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우각형파수부호], 노형토기(爐形土器),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원저단경호], 굽다리접시, 목긴항아리, 입큰귀때단지[광구소호], 손잡이잔[파배] 및 따비, 방형철기, 철검, 미늘쇠[유자이기], 쇠화살촉, 굽은옥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대구 가천동 고분군에서는 인골이 양호한 상태로 다량 확인되어 당시의 체질이나 형질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대구 가천동 고분군의 조성 시기는 1세기 후반~6세기 중엽이며, 이후로 오랜 기간 고분군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은 경부선 철도 건설공사와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 이전에도 과수원 등의 경작지로 이용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는 경작지와 산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은 대구 동부와 경산의 경계 지점에 있으며, 발굴 조사를 통하여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대구와 경산 지역의 고대사 복원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