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855 |
---|---|
한자 | 慶北被虐殺者遺族會[東區] |
영어공식명칭 | Gyeongbuk Survivors Associ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4·19 혁명 이후 6월 대구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대구 및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설립 목적]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정부 혹은 미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학살자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목적은 결성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에 잘 드러난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들은 좌익분자라는 이름으로 처형된 자의 유족이 결합한 단체로서 원한에 사무친 분노를 어찌할소냐, 우리들은 민주 건국 발전사상에 있어 유례없는 오점과 반민족적 죄과를 범한 동족 대학살에 희생된 원혼의 유가족에게 의하여 조직된 피의 결합체이다.(중략) 일부 반민주적인 사고들은 양민과 보도연맹원 국가보안법 관계 기미결수 등에 대하여 소위 옥석을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원혼 모독이 될 뿐 아니라 이것은 그 저의가 불분명한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변천]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1960년 6월 15일 대구직할시[현 대구광역시] 동구 대구역 앞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유족 및 일반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다. 1960년 10월 20일 서울 종로 견지동 소재 전 자유당 중앙당 부회의실에서 전국 유족회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전국 유족회 결성대회에서 처형 관련 군경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자는 등 대정부 투쟁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인해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활동은 좌절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1960년 7월 28일 대구역 광장에서 유족 및 일반 시민 약 2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지구 피학살자 합동 위령제를 개최하였다. 이 위령제를 위한 현수막에는 ‘무덤도 없는 원혼이여, 천 년을 두고 울어 주리라. 조국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 처형 관련된 군경을 색출 처단하라. 유족에 대한 경찰의 정치적 감시를 해제하라. 유족에게 보상금을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인명이 예방 차원에서 학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4·19시기에 경북피학살자유족회가 발족되어, 학살 현장의 발굴과 위령제 등의 활동을 벌여 나갔고, 사회적 여론이 높았다. 또한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데모 규제법과 반공법을 내용으로 하는 이대특별법의 입법반대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대구 이대악법반대 공동투쟁위원회 결성대회에 참여하였다. 1960년 9월부터 당시 만촌동과 지묘동을 비롯하여 송현동, 본리동 등지를 답사하였다. 1960년 10월 3일 경북피학살자유족회의 2차 발굴이 동구 지역에서 이루어졌는데 만촌동에서 28구, 고모동에서 300구의 희생자를 발견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만촌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고모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등지를 비롯한 경북 각 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 발굴 작업을 통한 위령 사업,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한 조직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