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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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鍾岩 |
영어공식명칭 | Lee Jongam |
이칭/별칭 | 이종순(李鍾淳),양건호(梁健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용석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종암(李鍾巖)[1896~1930]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이종암(李鍾岩), 이종순(李鍾淳), 양건호(梁健浩)로 불렸다. 대구농업학교를 중퇴하고, 열아홉살에 대구은행에 들어가 출납계 주임이 되었다. 1917년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은행 돈 1만 9000원을 가지고 만주로 도피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18년에 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퉁화현[通化縣] 독립군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학을 배웠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폭탄제조법을 익혔다. 이후 의열단을 조직하여 단원이었던 최경학(崔敬鶴)에게 폭탄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게 하여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20년에는 의열단 부단장직을 맡아 국내에 있던 일제의 각 기관을 파괴하고자 하였으나 사전 발각되기도 하였다. 1922년 3월 상하이에서 일본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衣一]를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본인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후 탈출하여 1923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임장을 휴대하고 군자금 모금차 밀입국하여 활동하던 중 대구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묘소]
이종암의 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내 6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종암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