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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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把溪寺 大小人皆下馬碑 |
영어공식명칭 | Epitaph of Daesoingaehama of Pagyesa Temp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일주 |
건립 시기/일시 | 1693년 -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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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94년 -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영조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76년 -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영조 사망 |
현 소재지 |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
원소재지 |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
성격 | 하마비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13cm|폭 43cm|두께 17cm |
소유자 | 파계사 |
관리자 | 파계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 있는 조선후기 숙종대에 건립된 하마비
[건립 경위]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1693년(숙종 19)경 숙종이 현응대사에게 부탁하여 왕자[후일의 영조]를 얻는 데 대한 보답이다.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궁궐과 지체 높은 이의 사당, 향교, 관아, 왕릉, 귀족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파계사에 대소인개하마비가 세워진 유래는 경내에 제왕과 왕실의 안녕을 비는 원당(願堂)이 있기 때문이다. 즉 숙종의 명으로 만든 파계사 기영각에는 선조(宣祖)와 덕종(德宗)[세조의 아들로 추존된 왕], 숙종, 영조의 위패를 봉안했기 때문이다. 왕실의 원당에 감히 말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반과 유생의 횡포로부터 절을 지키고자 현응대사가 숙종 임금에게 왕실의 원당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하여 지어진 것이다.
[위치]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의 위치는 파계지를 지나면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가 모습을 보이면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 길은 성전암과 대비암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길은 바로 파계사 주차장 가는 길인데, 예전에는 연못이 있었다. 파계사 주차장을 지나면 파계사 경내로 이어진다. 파계사 주차장 한쪽에 있는 관광안내소 옆길을 오르면 부도밭이 있다. 부도밭 석축(石築) 위에 비석과 부도(浮屠)가 있고 그 옆에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의 크기는 높이 113㎝, 폭 43㎝, 두께 17㎝로 원규형(圓圭形)[둥근 모서리 형태] 화강석이다. 비개(碑蓋)[비석 덮개]는 원래 없고, 비부(碑趺)[비석 받침돌]는 타원형의 화강석으로 지상 높이 10㎝, 가로 94㎝, 세로 55㎝로 되어 있다.
[금석문]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 앞면에 ‘대소인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라고 적혀 있다.
[현황]
파계사 부도밭에는 대소인개하마비 1기가 서 있다. 이 밖에 파계사 부도밭에는 원의대사 부도와 비[1648], 전명대사 부도와 비[1658], 현응대사 부도와 비[1701]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사찰에 세워졌다는 측면에서 일반적인 하마비 건립에서 볼 수 없는 특수성이 보인다. 특히 파계사가 조선 후기 왕실의 원당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