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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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駐韓美軍撤收, 國家保安法 撤廢運動 |
영어공식명칭 | US Troop Withdrawal, Movement for the Abolition of National Security Law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로 550[신암동 29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99년 11월 30일 -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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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99년 1월 9일 -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전개 |
발생|시작 장소 |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로 550[신암동 294] |
성격 | 사회운동 |
[정의]
1999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전개된 주한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반대운동.
[역사적 배경]
1990년대 후반 민간차원의 남북교류가 추진되고 있을 때, 남북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가 요구되었다. 또 남북교류는 남북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방식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제고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경과]
1999년 11월 30일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앞에서 15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철폐 천막 농성이 전개되었다.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은 시민단체의 남북교류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주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동대구역 천막농성은 1999년 1월 9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벌어진 민족자주권 쟁취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대구경북 시도민결의대회가 계기가 되었다. 또 1999년 11월 27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철폐 2차 범시도민 행동의 날의 행사 이후 연결되어 전개되었다. 「국가보안법」 반대운동은 한라중공업의 노동파업과 농민들의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운동에서도 나타났으며, 1999년 연말과 2000년도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2000년 6월 3일부터 6월 10일까지 동대구역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지역 사회단체의 농성이 전개되었다. 그 사이 6월 9일에는 동대구역 농성장에서 고령군농민회 운영위원회의 주최로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의 밤 행사가 개최되었다. 그 뒤인 2000년 10월 28일에는 중앙파출소 앞에서 주한미군 철거를 위한 토요한마당이 열리기도 하였다.
[결과]
동대구역에서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반대를 위한 운동으로 직접적인 결과가 도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에 대한 제고와 「국가보안법」의 존폐 논쟁 및 개정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이끌어내는 성과를 나타내었다.
[의의와 평가]
동대구역은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으로 이곳에서 행한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과 주한미군철수 투쟁은 크게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