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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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勞動者 罷業事件 |
영어공식명칭 | Daegu Tax Workers Strike Affai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4년 5월 25일 - 대구 택시노동자 파업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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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84년 5월 26일 - 대구 택시노동자 파업사건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대구 택시노동자 파업사건 -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로 550[신암동 294] |
종결 장소 | 대구 택시노동자 파업사건 -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로 550[신암동 294] |
성격 | 노동운동 |
관련 인물/단체 | 택시 노동자들 |
[정의]
1984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사납금 자율화 조치에 저항하며 사납금 인하와 부제 완화 투쟁을 벌인 대구 택시노동자의 총파업투쟁.
[역사적 배경]
1980년대 노동자들의 상태는 매우 열악했다. 1980년에서 1990년에 걸쳐 노동생산성은 10.9% 증가하였으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7.1%에 그쳤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1987년 현재 주당 54.0시간으로 세계 최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군사정권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등 국제스포츠경기 개최를 앞두고 민주화와 개방 압력에 직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영업택시도 마찬가지였다. 1983년 말부터 시작된 사납금 ‘자율화조치’는 군사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택시영업에서 사납금은 택시운전노동자의 임금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가 개최되기 전 사납금의 자율화조치에 맞서 택시노동자들이 자발적 파업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과]
1984년 5월에 대구직할시[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자율화 조치에 저항하며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는 대구 택시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이 전개되었다. 택시 노동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조직으로 완강하게 전개되었다. 1984년 5월 25일 새벽 1시 대구시청 앞에서 5명의 택시 노동자들이 동료 택시 기사들에게 “사납금을 내리고, 부제 완화를 관계기관에 요구하자”로 설득해, 3시간 만에 중앙주유소, 대구시경, 태평지하도, 대구역 등지에서 5백여 명이 집결하여 집단 농성에 돌입했다. 1984년 5월 26일 정오 무렵 1백여 명 택시노동자들이 “노조결성 방해 말라”, “의료보험 실시하라”, “전면월급제 실시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대구시청 앞으로 행진하였다. 이에 택시노동자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노동단체와 경북대학교 학생들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유인물이 살포되었다. 대구 택시노동자들의 총파업 이후 경상북도 경산시, 경상북도 구미시, 대전광역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 전국으로 택시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는 영향을 미쳤다.
[결과]
1984년 5월 26일 택시노동자들의 총파업은 택시조합측에서 사납금 4천 원 인하, 택시 10부제에서 6부제로 완화 등 8개 항의 요구 조건을 택시조합측이 수용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제일택시에서 계속 농성 중이던 택시노동자들이 연행,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의의와 평가]
1980년대 개방 압력에 직면한 정부의 자율화 조치에 맞선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발적 운동으로 전개되어 자신들의 경제 투쟁을 승리로 이끈 노동 파업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