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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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大案反對大邱學生共鬪委 |
이칭/별칭 |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반대운동,대구공립상업중학교,대구농림중학교,경북중학교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7년 대구광역시에서 미군정청의 국대안에 반대하기 위하여 결성된 학생 단체.
[개설]
미군정청이 경성대학의 3개 학부와 서울에 있는 9개의 관립 학교를 통폐합하여 종합대학교를 만든다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약칭 국대안]을 발표하자 국대안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대구에서도 국대안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이 대구사범대학[대구사범학교], 대구농업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대구의학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대구공립상업중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경북중학교[현 경북고등학교], 대구농림중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계성중학교, 능인중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 대구 지역 각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1947년 2월 결성된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國大案反對大邱學生共鬪委)는 국대안에 반대하는 대구 지역 학생들이 결성한 단체로 1948년까지 학생들의 동맹휴학 투쟁을 주도하였다.
[설립 목적]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는 1946년 7월 미군정청이 발표한 국대안을 반대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는 미군정청의 국대안에 반대하며 동맹휴학 투쟁을 지도하였다. 국대안 반대 투쟁의 명분은 ‘식민지 교육 반대’와 ‘학원의 자유화와 민주화’였다. 1947년 2월 무렵 대구 지역의 모든 대학교와 일부 중등학교에서 동맹휴학이 이루어졌다. 대구사범대학, 대구의학전문학교, 대구농업전문학교 등에서 동맹휴학 투쟁이 전개되었다.
1947년 2월 17일에는 대구농림중학교, 경북중학교 등이 성명서를 내고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뒤이어 계성중학교, 능인중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도 동맹휴학을 펼쳤다. 1947년 2월 18일에는 대구 시내 중학교 14개 중 9개 학교가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다.
동맹휴학 투쟁을 주도하였던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는 경상북도 대리지사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국대안 철회, 도 학무국장 인책 등 5개 항의 요구가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의 국대안 반대 투쟁은 미군정이 국대안에 관한 수정 법령을 공포하면서 반대운동이 가라앉기 시작한 1948년까지 계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국대안 반대운동은 해방공간에서 민주적 교육체제를 건설하려고 전개한 교육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는 동맹휴학 투쟁을 지도하면서 교육 민주화운동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한몫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