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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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與諸賢 謁硏經書院 登畫巖 |
영어공식명칭 | Visit Yeongyeong Confucian Academy with many wise men and climb Hwa-ar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27년 - 채치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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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85년 - 채치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97년 -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 저자 채치룡의 『시산양매당집』 간행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칠언율시 |
작가 | 채치룡 |
[정의]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인 채치룡이 방문하고 화암에 올라 지은 한시.
[개설]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與諸賢 謁硏經書院 登畫巖)」을 쓴 채치룡(蔡致龍)[1727~1785]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운오(雲五)이며, 호는 양매당(養梅堂)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채두명(蔡斗命)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 홍응하(洪應夏)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채두추(蔡斗樞)이고, 친어머니는 영일정씨 정준형(鄭俊亨)의 딸이다. 1772년(영조 48) 낙빈서원(洛濱書院)을 창건하였다. 정도형(鄭道亨), 장이인(張以仁), 윤형관(尹衡觀) 등과 종유하였다. 저서로 『양매당유집(養梅堂遺集)』이 전하는데, 『시산양매당집(是山養梅堂集)』에 수록되어 있다. 『시산양매당집』은 채치룡의 『양매당유집』 필사본과 채영걸의 『시산유집(是山遺集)』 필사본의 합본이다.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은 채치룡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에 있던 연경서원(硏經書院)을 방문하고 지은 한시이다.
[구성]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은 칠언율시이다.
[내용]
강서만적시래심(江西晩跡始來尋)[강서에서 늦게나마 비로소 찾아오니]
부자묘전풍물심(夫子廟前風物深)[선생의 사당 앞 풍물 넉넉하구나]
일대계류창해의(一帶溪流蒼海意)[한 띠의 시냇물은 바다를 생각하고]
구층암흘백운심(九層岩屹白雲深)[구층 높은 암석은 흰 구름에 들었네]
항장청액유오조(抗章請額由吾祖)[사액을 구하는 글이 우리 선조에서 연유하여]
역세명인견사림(歷世明禋見士林)[밝게 공경하는 제향 대대로 사림에게 보이었네]
초목여금개유채(草木如今皆有彩)[초목은 지금처럼 모두 광채가 있을 것이니]
빙군위설감회음(憑君爲說感懷唫)[그대에게 의지하여 감회를 읊으며 말하여 보네]
[특징]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은 침(侵)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율시이다. 1행에도 운자를 두었다.
[의의와 평가]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은 연경서원과 화암의 빼어난 경치를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선조 채몽연(蔡夢硯)의 연경서원에 대한 청액소(請額疏)로 인하여 사액을 윤허받은 공적을 내세워 선조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선조 채몽연의 업적이 자연과 연경서원 그리고 화암과 함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