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철소
-
백제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철산지. 곡나철산은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백제의 철산지이다. 곡나철산이 언급되는 부분의 신빙성이나 성격 등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지명 고증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진행되었다. 일본 측 사료에 등장하는 만큼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먼저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후 한국 학자...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랫쇠실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다. 특히, 대소원면은 지금까지 모두 43곳의 야철지가 확인된 곳이며, 고려시대의 다인철소가 위치했던 곳이다. 금곡리는 대소원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쇠와 관련된 지명이나 마을명에서 그 비중이 확인된다. 금곡리에서 야철지는 아랫쇠실과 조랫말 두 곳에서 확인된...
-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철 및 관련 수공업품을 생산하였던 특수행정구역. 다인철소가 언제 어떠한 경위로 설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의 기록에 몽고군을 격퇴한 공으로 다인철소가 현으로 승격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다인철소는 규모와 생산량, 철 가공 기술과...
-
고려 후기 유학산성에서 다인철소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시대 철소(鐵所)는 생활 용구나 무기류의 제작에 필요한 철을 생산하거나 제작하는 특수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다인철소는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 서쪽 30리”에 있었다 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당시 이 지역이 ‘충주목 이안면’으로 편성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이안면과 유등면을 통합하면서 첫 글자를 따서 이류면이라고 했다. 2012년 대소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류면이 역사서에 처음 언급되는 것은 『고려사(高麗史)』이다. 충주목조에 익안현(翼安縣)이 나오는데 익안이 바로 이안이다. 이류면의 바탕이 된 이안면과 유등면은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방리,...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두정리 파소골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야철지 유적. 이류면[현 대소원면]은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이안면과 유등면이 합쳐지면서 두 면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된 곳이다. 이안면은 이류면의 북쪽이며 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으로 원래 이름은 다인철소(多仁鐵所)였으나, 몽고와의 항쟁에서 승리한 덕에 익안현(翼安縣)으로 승...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 술음재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야철지 유적. 이류면 지역은 고려시대 다인철소가 있던 곳으로 과거에 대규모의 쇠부리업이 행해진 곳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대소원면 지역의 야철지는 43곳에 달한다. 이는 충주에서 확인된 77곳 야철 유적의 55%에 이르는 수치이다. 매현리 술음재 야철지는 대소원면 문주리에서 매현리 소재...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탑말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은 고려시대에 다인철소가 있던 지역으로 40여 곳이 넘는 많은 야철지가 남아 있다. 철 제련은 철광석이 주변에서 생산되어야 하고, 철을 녹일 수 있는 땔감을 쉽게 얻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에 용광로와 강제 송풍을 위한 기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야철지에는 철광석과 백탄 등이 있어야...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은 다인철소(多仁鐵所)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구릉성 저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달천강과 요도천을 끼고 있다. 야철지는 주로 평야지대와 중산간 지형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문주리 팔봉 야철지는 산간 지역에 속한다. 충주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3번 도로를 이용하다가 살미면 세성리...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 노계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본리 노계마을은 대소원면사무소가 있는 소재지에서 대소교를 통해 요도천을 건너 바로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똑바로 따라가면 있다. 본리 다인철소지는 노계마을 중심부에 있는 노계마을자랑비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아무런 야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마을 뒤편 경...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 장고개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에는 많은 야철지가 확인된다. 충주박물관이 조사한 대소원면의 야철지는 모두 43곳이 보고되어 있다. 이는 대소원면이 고려시대의 다인철소였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해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한 곳의 야철지에서 10명의 장인이 쇠부리업에 종사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대소원면에는 43곳의 야철지가...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쇠를 이용하여 각종 연장을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던 곳이다. 대장간에서 철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야장(冶匠)이라고 하며 흔히 대장장이로 불린다. 충주는 전국에서 주요 철산지 중의 한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의 별칭.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예성(蘂城)과 대원(大原)이 등장한다. 그 중 예성은 대몽항쟁의 공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별호인데, 이후부터 충주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별칭으로 불렸다. 현재까지도 충주의 학교·단체 등의 이름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고려사』에는 예성에 “1255년(고종 42)에 다인철소(多仁鐵...
-
고려 후기 고종 대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려의 지방 행정제도는 군현 밑에 촌(村)이 있어 토착인인 촌장의 자치제로 운영되었다. 이들 촌에는 양인 신분의 촌민이 거주했고, 이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천민의 집단 거주지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 등의 특별 행정구역이 있었다. 그중에서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먼학이골에 있는 고려시대 추정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장성리에는 먼학이골을 비롯하여 성안들 야철지, 갈거리고개 야철지, 갈가실 야철지, 능골1 야철지, 능골2 야철지, 양장고개 야철지 등 쇠똥이 발견되는 야철 유적 추정지가 많다. 충주에서 주덕 방면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효신산업을 지나면 왼쪽으로 성종마을...
-
고려의 대몽항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73년(원종 14)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전개되었다. 1225년(고종 12)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뒤, 몽고는 1231년(고종 18) 조공 거절 및 저고여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고려에 대한 제1차 침입을 필두로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
-
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
-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현재 충청북도 충주 지역은 신라의 중원경에서 고려 940년(태조 23년) 충주(忠州)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주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이곳에 목(牧)이 설치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부분적으로 행정 단위의 명칭이 변경되기도 하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