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문반직과 무반직에 임용된 충청북도 충주 출신 관인. 충주는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와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과 통일신라의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이후에도 행정상의 중심지로 충주목(忠州牧)이 설치되어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충주 출신으로 문무관료가 된 인물은 충주목이 오늘날의 음성군과 괴산군 일...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유(子游). 시호는 정장(貞莊). 아버지는 광주목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어득해(漁得海)이다. 어유소(漁有沼)는 1451년(문종 1) 내금위에 선발되고 1456년(세조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복시직장,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460년 두만강을 건너 조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던 여진, 알타이, 골간, 올랑합,...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어중익을 시조로 하고 어백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성씨. 충주어씨는 고려 초 평장사를 지낸 어중익(魚重翼)을 시조로 한다. 어중익은 본래 지씨였는데 겨드랑이에 있던 세 개의 비늘 때문에 고려 태조 왕건이 어씨(魚氏)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어중익 이후 계보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고려 말 성균진사를 지내면서 가세를 일으킨 어승진을 중시조 겸 1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