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몽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예몽·김기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문왕의 셋째 아들로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무진주가 광산으로 개칭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 삼중대광에 오른 김길(金佶)로부터 8대...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 종중에서 세운 유허비. 조선 전기의 문신 광산김씨 김성원(金性源)의 여덟 아들이 모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그중 네 명은 대과에 합격하여 청관현직(淸官顯職)으로 출세한 것을 ‘팔문(八文)’이라 하고 이를 기려 세운 비석이다. 충주시 엄정면 율종리는 ‘팔문(八文)’이 태어난 곳이다. 광산김씨 문경공(文...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지(成之). 증조부는 김화(金華), 할아버지는 김소(金遡)이다. 친아버지는 문경공 김예몽(金禮夢)으로, 후사가 없는 참의공 김의몽(金義夢)의 양자로 들어갔다. 형은 김덕원(金德源)이다. 정계소(鄭繼紹)의 딸 증정부인 서산정씨 사이에서 김철문(金綴文), 김말문(金末文), 김내문(金乃文) 등 8남을 두었다. 아들 8명...
-
조선 전기 광산김씨 충주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보(敬甫), 시호는 문경(文敬).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김소(金遡)이다. 부인 창평조씨 사이에 성균관사예를 지낸 아들 김성원이 있다. 1429년(세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정자가 되었다. 저작랑, 예문관감찰을 거쳐 1440년(세종 22) 통신사의 서...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잠병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잠리(中岑里)·사천리(沙川里)·사랑리(沙浪里)·하담리(荷潭里)·상잠리(上岑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잠병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