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이극감(李克堪)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이연경(李延慶),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이다. 민건(閔健)의 딸 정부인 여흥민씨 사이에서 아들 이근후와 세 딸을 두었다. 1557년(명종 12) 충주에서 태어난 이광악은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