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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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張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인동 장씨 본관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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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인동 장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 |
세거|집성지 | 인동 장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 |
성씨 시조 | 장금용 |
입향 시조 | 장용 |
[정의]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고 장용(張鎔)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인동 장씨(仁同張氏)의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다. 장금용의 13세손인 장백(張伯)은 고려 우왕 때 태상경(太常卿)으로 문하시중 도첨의밀직사(門下侍中都僉議密直使)를 역임하였는데, 후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어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 따라서 후손들은 장백을 중시조로 삼아 옥산을 본관으로 하였는데, 조선 말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바뀜에 따라 본관을 인동으로 고쳤다. 하지만 예전 그대로 옥산을 본관으로 쓰는 후손들도 있다.
[입향 경위]
1700년대 초 장용(張鎔)이 구미시 인동 신월(新月)에서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로 이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입향 경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후손들의 말에 의하면 난을 피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330가구 8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2년 현재 각남면 함박리에 2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