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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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梁氏 |
이칭/별칭 | 제주 양씨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남원 양씨 본관 - 전라북도 남원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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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남원 양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
세거|집성지 | 남원 양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
성씨 시조 | 양을나 |
입향 시조 | 양근남 |
[정의]
양을나(梁乙那)를 시조로 하고 양근남(梁根南)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제주도에서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하는 양을나(良乙那)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에 입국한 후 내물왕으로부터 성주·왕자의 작호를 받으면서 성씨 양(良)을 양(梁)으로 고쳤고,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 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南原)을 본관으로 삼아 제주 양씨로부터 분적하였다고 한다. 병부공파·예성군파·청주파·대방군파·용성군파(龍城君派)·장영공파로 계파가 나뉘어져 있다.
[입향 경위]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6세손으로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양근남(梁根南)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청도군 풍각면 안국리에 정착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2리 안국 마을에 약 30여 가구가 있으며,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전역에 142가구 387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풍각면 흑석리에 입향조 양근남을 모시기 위한 안강재(安岡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