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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65
한자 禮里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남면 예리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남면 예리동에서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23㎢
가구수 209가구
인구[남,여] 435명[남자 220명, 여자 21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각남면사무소가 있는 예리리는 가례(加禮)와 평리(坪里)를 합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각남면의 중심 마을로서 행정·교육 중심지이다.

[명칭 유래]

예리리의 본래 이름은 들 가운데 있어서 들 마을이다. 들 마을이 변해서 들 말이라고 하는데 옛 이름은 평리였다. 평리는 원래 옥요(沃饒)였는데, 옥요란 문전옥답이라서 넉넉한 살림이라는 뜻이란다. 가례는 대구와 청도의 갈리는 곳이라 해서 가례라고 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례와 초동면의 평리를 병합하여 예리동이라 하고 각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예리동에서 예리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교통편이 좋아져서 면사무소와 지서가 주재하게 되었고, 해방 후 한때 시장(市場)도 형성되었으나 풍각 시장이 세가 커짐에 따라 폐시가 되었다.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던 풀무간이 있어서 불매간으로 불리지기도 했다. 1972년 예리 1리 마을 회관이 건립되고, 1976년 세월교가 가설되고, 1983년 도수로가 공사되었다. 예리 2리에서는 1974년 대통령 특별 지원 새마을 사업으로 지원금 90만 원을 받아 하수구 복개와 소하천을 석축하고, 1981년 새마을 복지 회관을 건립하였다. 예리 3리에서는 1972년 마을 회관을 건립하고, 1973년 안길을 확장하였으며, 1975년 보설치와 함께 하수구를 보수하였다.

[자연 환경]

청도천이 흘러오다 신당리 이실 앞에서 굽이쳐 이서면 구라리 쪽으로 물이 돌아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도천변에 경작지가 많이 있다. 충적토를 이루고 있는 부근에 사과 농사를 많이 하였지만, 지금은 경지 정리가 되어 문전옥답을 이루고 있다. 가례 앞들은 비교적 높은 곳으로 전형적인 다랑논을 이루고 있으나, 그 외에는 모두 평지에 논이 있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2.23㎢이며, 총 209가구에 435명[남자 220명, 여자 2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구곡리, 서쪽은 각남면 신당리, 북쪽은 이서면 구라리·서원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예리 1∼3리로 분동되어 있으며, 가례 마을과 평리 마을이 있다.

예리리 북쪽으로 국도 20호선이 지나며, 각남면사무소와 각남 파출소, 각남 초등학교, 산서 농업 협동조합이 자리하고 있다. 각남 초등학교에는 이 학교 출신 곽예순이 설립한 운경 재단이 청도 농기구 박물관을 지어 기증하였고, 뜻있는 학부형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기증하여 현재 전시하고 있다. 산서 농업 협동조합은 풍각 농업 협동조합과 각남 농업 협동조합이 신설 합병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청도에서는 가장 먼저 벌초 대행과 감말랭이 사업을 하였고, 냉동 창고를 임대해서 수입을 얻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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