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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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盡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홍진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6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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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홍진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흥진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필사본 |
작가 | 윤순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백하(白下) 윤순(尹淳)[1680~1741]의 유묵첩.
[개설]
흥진첩(興盡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총독(總督)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유물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흥진첩은 그 중 1종이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6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흥진첩의 크기는 43㎝×29㎝이며 모두 54쪽의 분량이다.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첩의 맨 앞과 끝에는 담묵의 산수화 2편이 실려 있고 그 다음에는 ‘흥이 다하여 되돌아 간다’는 의미의 ‘흥진귀래(興盡歸來)’라는 대자(大字)가 한쪽에 한 글자씩 행서(行書)로 쓰여 져 있다.
[의의와 평가]
흥진첩은 조선 후기의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윤순이 송나라의 소식(蘇軾)[1036~1101]과 구양수(歐陽修)[1007~1072] 두 사람이 제가(諸家)의 서예(書藝)를 논한 구절을 행서와 초서[行草]로 쓴 작품이다. 모두 다섯 편의 평이 실려 있는데 첫째는 왕희지(王羲之)[307~365], 둘째는 안진경(顔眞卿)[709~785], 셋째는 채양(蔡襄)[1012~1067], 넷째는 소식 자신의 글, 다섯째는 두연(杜衍)의 초서를 논한 글이다. 이 중에서 세 번째만이 구양수의 평이고 나머지는 모두 소식의 글이다. 윤순 글씨의 참맛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윤순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백하(白下)는 호이다. 윤두수(尹斗壽)[1533~1601]의 5대손으로 양명학에 심취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글씨의 대가로 우리나라의 역대 서법과 중국 서법을 아울러 익혀 한국적 서풍을 일으켰다. 서풍은 왕희지·미불(米芾)의 영향이 많은데 윤순의 필적을 보면 소식(蘇軾)체로 쓴 것도, 동기창(董其昌)체에 가까운 것도 있다. 옥동(玉童) 이서(李敍)[1662~1723]로부터 글씨를 배웠고 원교(圓喬) 이광사(李匡師)[1705~1777] 등을 문하에서 배출함으로써 조선 후기 가장 한국적인 독특한 서체를 완성하는데 한 정점을 이루었다. 특히 윤순의 행서(行書)는 각가(各家)의 장점을 조화시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