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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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營別章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함영별장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4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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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영별장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함영별장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필사본 |
작가 | 원성유 외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시첩.
[개설]
함영별장첩(咸營別章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총독(總督)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유물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함영별장첩은 그 중 1종이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함영별장첩은 한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38㎝×24㎝이며 분량은 22쪽이다. 함영별장첩에는 운정(雲亭) 원성유(元聖兪)[1640~?], 도운(陶雲) 이진망(李眞望)[1672~1737], 백하(白下) 윤순(尹淳)[1680~1741] 등 모두 6인이 지은 송별시 8편이 실려 있다.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함영별장첩은 1706년 6월 함경도 관찰사로 나가는 이정겸(李廷謙)[1648~?]이 임지로 떠나기 전 송별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지은 송별시를 모은 시첩이다. 송별연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참석하였으며 7수의 시가 실려 있다[원성유와 윤순의 시가 각각 두 편씩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무자년(戊子年) 동짓달에 덕수(德壽)라는 사람이 쓴 시는 누군가의 회갑연에서 지은 시로 이정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정겸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익(景益)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82년(숙종 8)에는 증광문과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이조정랑(吏曹正郞), 대사간(大司諫)간 등을 거쳐 1706년 5월에 함경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이정겸은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하였으며, 평소에는 과묵하여 말이 적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과도 허물없이 사귀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을 생모처럼 극진히 모셔[양자로 입양]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숙종 앞에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講)할 때는 놀이와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임금이 되어서는 안 되니 인조와 효종이 놀이와 여색을 멀리한 것처럼 덕을 닦으라는 직언을 하여 숙종이 아무 말도 못하게 할 정도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함영별장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선 후기의 명필 윤순의 글씨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윤순은 자작시를 친필로 썼을 뿐만 아니라 첩의 첫머리에 나오는 원성유의 시 두 편도 대필하였다. 또 윤순의 형이자 명필이었던 윤유(尹游)[1674~1737]와 이광사의 당숙이었던 이진망의 시까지 실려 있다. 따라서 함영별장첩에는 몇 편 안되지만 조선 후기 명필들의 글씨들을 두루 싣고 있어 서예사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함경도 지방의 풍물을 읊은 원성유의 시[첫 번째 시] 또한 내용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