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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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聽松先生眞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청송선생진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1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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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송선생진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청송선생진필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필사본 |
작가 | 성수침 |
소유자 | 경남 대학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서첩.
[개설]
청송선생진필(聽松先生眞筆)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청송선생진필은 그 중 1종이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1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청송선생진필은 7쪽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기는 32㎝×20㎝로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각 쪽에는 5행씩 실려 있고 마지막에는 ‘두보(杜甫)’라는 이름과 함께 2행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청송선생진필은 두보의 문장을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표지에는 ‘청송(聽松)’이라는 이름이 떨어져 나가고 없어 누군가가 다시 연필로 써 놓았다. ‘청송’은 조선 중기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문정공(文貞公) 성수침(成守琛)[1493~1564]의 호이다. 때문에 일본에서 건네 준 해제에는 청송선생진필을 성수침의 작품이라 하였으나, 단정할 수는 없다.
성수침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중옥(仲玉), 호는 청송(聽松)·죽우당(竹雨堂)·파산청은(坡山淸隱)·우계한민(牛溪閒民) 등이 있다. 아우 수종(守琮)과 함께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천거되었으나, 곧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처형되고 그를 추종하던 많은 유학자들이 유배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두문불출하였다. 이때부터 경서를 두루 읽고 『태극도(太極圖)』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조화의 근본 탐구에 몰두했다. 1541년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처가가 있는 경기도 파주(坡州) 우계(牛溪)에 은거했다. 1552년(명종 7)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와 충청남도 예산 현감(禮山縣監) 등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나가지 않고 성리학에 몰두하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그리하여 그의 문하에는 아들 혼(渾)을 비롯해서 많은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는데, 그의 서법은 조맹부(趙孟頫)로부터 나왔지만, 기일(奇逸)하고 탈속(脫俗)함으로 말하면 조맹부 보다 오히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죽은 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청송집』이 있으며 글씨로는 「방참판유녕묘갈(方參判有寧墓碣)」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