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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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檜山甘氏 |
영어의미역 | Hoesan Ga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감규를 시조로 하고 감익한 이후의 세손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회산 감씨의 시조 감규(甘揆)는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1351년(충정왕 3)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고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15세손 감수화(甘受和)가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져서 그 이전까지는 연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16세손 감철(甘喆)이 북벌을 간하여 중지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회산(檜山)으로 바꾸었다. 회산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이다.
회산 감씨는 시조 감규 이후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려 때 감규의 손자 감흥협(甘興鋏)은 평장사를 지냈고, 감철의는 이부 상서를 역임했다. 감소연(甘紹延)은 밀직제학을 지냈으며, 감진요(甘震曜)는 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감침(甘鍼)과 감전형(甘全亨)은 각각 이부 시랑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조선 시대에는 회산군 감철의 손자로 예부 승지를 지낸 감원한(甘元漢)과 이조 참의에 오른 감익한(甘益漢) 형제가 뛰어났다.
특히 감익한은 1455년 사육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입었다. 임진왜란 때 무공을 세운 관술정(觀術亭) 감경인(甘景仁)과 감경륜(甘景倫) 형제도 유명하다. 최근에 감김해라고 하여 한일합방 직전까지 김해 부사를 지낸 이로는 감기현(甘麒鉉)이 있으며 『동미문집(東湄文集)』이 남아 있다. 주요 계파로는 남계공파(南溪公派)·둔엄공파(遯奄公派)·삼열공파(三烈公派)·퇴은공파(退隱公派)·현감공파(縣監公派) 등이 있다.
[입향 경위]
회산 감씨의 창원 입향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입은 감익한 이후에 관향인 창원으로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창원시 의창구 내리동에 기거하던 회산 감씨는 창원 육군 탄약창 건설로 인해 마을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각 처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창원시 의창구 내리동 반룡산 남동쪽[창원 해안도로 쪽] 육군 탄약창 입구부 안에 관술정(觀術亭)이 있다. 창원 향교 서쪽의 육영재를 철거하면서 회산 감씨 문중에서 인수받아 1877년(고종 14)에 옮겨 지은 것이다. 1936년 관술정 뒤에 삼열사를 지어 임진왜란 때 선무 원종공신에 오른 감경인과 감경륜 형제를 기리며 해마다 음력 4월에 유림제를 지내고 있다. 회산 감씨 후손들은 또 세거지인 창원시 의창구 내리동에 제단과 신도비를 설치하고 매년 음력 4월 15일 향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