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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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孫氏 |
영어의미역 | Miryang S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광록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밀양 손씨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손’이라는 성씨는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은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문효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도 관직에서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삼고 손순을 시조로 받들었다.
[입향경위]
만성헌(晩惺軒) 손광록(孫光祿)이 처음으로 창원에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집성촌이 옛 창원군 웅남면 정리에 있다. 또 참봉 손계남이 밀양에서 창원시 북면 무곡리로 이거하면서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밀양 손씨에는 예안 현감을 지내고 문한(文翰)으로 이름난 손영제(孫英濟)와 창원부사 등을 역임한 성리학자 손기양(孫起陽),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음을 당한 손서륜(孫敍倫),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손덕심(孫德沈) 등이 있다.
노상직(盧相稷)이 쓴 『무산재기(茂山齋記)』에, “우리 밀양 손씨는 광리군(廣理君) 이래로 대대로 밀양에서 살았는데, 목사(牧使) 손책(孫策)에 이르러 부인 이씨가 둘째 아들 밀직부사(密直副使) 손유경(孫有敬)이 보성(寶城)으로 귀양을 감에 따라가셨는데 이로 인하여 그곳에 가문이 있게 되었다. 7대를 전하여 사룡(泗龍)과 참봉(參奉)으로 호가 두엄(斗嚴)이 있었는데, 낙안(樂安)에서 옛 땅 밀양으로 돌아왔다. 다시 2대를 전하여 회산의 무곡에 자리를 잡으니 곧 참봉공이다.”라고 밀양 손씨의 내력과 창원으로 입향한 경위를 기록해 두었다. 여기서의 참봉공은 곧 손계남이다.
[현황]
현재 창원 국가 산업 공단 조성으로 사라진 옛 창원군 웅남면 정리(井里)에 밀양 손씨들의 집성촌이 있었고, 창원시 의창구 북면 무곡리에 손계남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관련 유적]
창원시 의창구 북면 무곡리에 손계남을 모시는 재실인 무산재(茂山齋)가 있다.